연극계 큰별들 ‘햄릿’으로 뭉쳤다

입력 2016-04-10 19:50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연극으로 '햄릿'을 무대에 올리는 노장들. 뒷줄은 왼쪽부터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배우 김성녀 정동환 유인촌 손숙 윤석화 손봉숙, 프로듀서 박명성이고, 앞줄은 왼쪽부터 연출가 손진책, 배우 권성덕 박정자 전무송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최고령 75세부터 막내 60세까지 평균 나이 68.2세인 노배우 9명이 연극 ‘햄릿’을 공연한다. 한국 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해랑(1916∼1989)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려지는 이 작품은 7월 12일∼8월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장과 신시컴퍼니가 공동 제작하는 ‘햄릿’의 출연진은 권성덕(75) 전무송(75) 박정자(74) 손숙(72) 정동환(67) 김성녀(66) 유인촌(65) 윤석화(60) 손봉숙(60) 등 9명이다.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온 거물 배우들로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함께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이 작품의 프로듀서 박명성(53), 연출가 손진책(69),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54)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다.

이해랑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연극에 눈을 떴다. 광복 후 우익 진영 연극계의 대표적 인물로 극단 극협 등을 이끈 그는 1950년 국립극장 개관과 함께 전속극단 신협의 대표가 됐다. 악역 전문 배우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점차 연출로 방향을 바꿔 1989년 타계할 때까지 200여편을 연출했다. 국립극장장, 드라마센터 극장장, 예총 회장, 예술원 회장, 8∼9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예술계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1991년 그의 이름을 딴 이해랑연극상이 제정된 이후 연극계를 대표하는 상으로 자리 잡았다. 26회째인 올해는 연출가 김광보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햄릿’은 이해랑 선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작품이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9월 그의 연출로 피란지인 대구에서 최초로 전막공연이 이뤄졌다. 또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품도 ‘햄릿’이었다. 제작을 맡은 신시컴퍼니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이해랑 선생이 사랑한 작품이자 지금까지 많은 연출가들에게 탐미의 대상이 돼왔다”면서 “올해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과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햄릿’만큼 적합한 작품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햄릿’은 원래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가장 길지만 극작가 배삼식이 각색을 맡은 이번 공연은 압축을 통해 시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원래 앙상블이 많이 필요하지만 이번엔 배우 9명이 모든 등장인물을 소화할 예정이다.

타이틀롤인 햄릿 역은 유인촌이 맡았고, 윤석화가 오필리어를 연기한다. 또 정동환이 클로디어스왕, 손숙이 거트루드 왕비, 박정자가 폴로니어스, 전무송이 레어티즈, 김성녀가 호레이쇼, 권성덕이 무덤지기, 손봉숙이 로젠크란츠 역에 캐스팅됐다. 여배우인 박정자가 폴로니어스를 맡고 김성녀가 호레이쇼를 연기하는 등 성별과 다른 배역을 맡는가 하면, 각각이 맡은 주요 역할 외에 다른 역할도 일부 소화하게 된다.

연출가 손진책은 이번 캐스팅과 관련해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나이에 맞는 캐스팅은 아니지만 연기력과 발성으로 충분히 배역을 소화할 수 있다”면서 “해외에서도 50대 배우가 햄릿을 연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 햄릿 역을 맡은 유인촌은 1989년 이해랑 선생의 유작이 된 ‘햄릿’에서도 타이틀롤을 맡은 바 있다. 유인촌은 “늘 다시 하고 싶었던 햄릿 역할을 이번에 연기할 수 있어서 감개무량하다”면서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이에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2000년 이해랑연극상 제정 10주년 및 이해랑 서거 11주기를 추모하여 ‘세 자매’가 공연된 바 있다. 당시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이 연출을 맡고 박정자 손숙 윤석화 서희승 등이 출연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