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협박형 선거운동이 막판 전략인 이상한 총선

입력 2016-04-10 17:38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정치권의 유세전도 가열되고 있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정책과 비전은 실종됐다. 공약은 이전에 내놨던 것을 살짝 고치고 다시 가져온 ‘셀프 공약’이 다수를 점하고 있고, 그마저도 재원조달 방안 등이 빠진 공약(空約)이 넘쳐난다. 대신 이 자리는 유권자를 향한 선동적인 선거전이 차지해 버렸다. 특히 여야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력 정치인들의 ‘협박 정치’가 도를 넘어섰다. 우리 당을 찍지 않을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진다거나, 지지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감행하겠다는 식의 위협은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권을 우롱하는 행위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과반에 미달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김무성 대표와 친박 실세인 최경환 대구·경북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수뇌부 입에서 수시로 나온다. 심지어 “대구·경북의 대통령,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느냐”고 되묻는다. 자신들은 전통적 지지층에 대한 읍소라고 하지만 협박으로 들리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이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지방선거, 여러 재·보궐 선거에서 ‘박 대통령을 살려 달라’는 구호는 50∼60대 영남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집권 4년차를 맞은 여당이 아직도 대통령을 팔아서 표를 얻어서야 되겠는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대선에 불출마하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힌 것도 선뜻 이해할 수 없다. 이 지역에서 반감이 큰 문 전 대표가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는 것까지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총선에서 호남에 출마한 더민주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경우 자신이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폭탄 선언’은 현재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제외)에서 1위를 달리는 유력 정치인이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는 총선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당 후보가 지지를 못 받았다고 해서 대선을 포기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제 공은 또 국민들에게 넘어왔다. ‘식물 대통령’과 ‘정계 은퇴’라는 자극적 단어에 적잖은 유권자들이 싱숭생숭할 수 있다. 식물 대통령에 마음이 흔들리면 새누리당은 다시 영남에서 확고한 지지세를 확인할 것이다. 문 전 대표의 정계 은퇴를 바라지 않는 호남 유권자들은 지금이라도 표심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겁박의 정치’가 통한다면 정치권은 다음에도 똑같은 수법을 들고 나올 게 분명하다. 온갖 말들의 향연이 판치는 선거 막판에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