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다가 깊은 상처를 받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사랑의 비결을 안다면 달라질까요.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본문에서 ‘거하라’는 말은 신약성경의 언어였던 그리스어 ‘메노(mevnw)’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메노는 ‘머무르다, 살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연인들처럼 가끔씩 시행하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연약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사랑 안에 있으면 그 힘으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사도바울이 로마서 3장 22절에서 말하는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메노는 또 사도행전 20장 5절에 나온 것처럼 ‘기다리다’의 의미로도 사용됐습니다. 기다림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스스로의 무지와 연약함을 깨닫고 강해질 때까지 그들을 기다려주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해주지 못합니다.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성급하게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대방을 바꾸기 전에 먼저 그 사람처럼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이 여러 명이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고 그와 따뜻하게 대화를 나누십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집어든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그런 일을 겪은 두 여인은 변화됐습니다. 설득이 아니라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 메노의 사랑, 즉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의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책망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20장 3절에서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실수로 살인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감정적 복수를 하지 못하도록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겁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변화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기다림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만이 완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안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을 기다려주고 차별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김상기 목사 (경기도 이천은광교회)
◇약력=△총신대신학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졸업 △총신대 운영이사 역임 △사회복지법인 우성원 운영위원장
[오늘의 설교] 메노의 사랑
입력 2016-04-10 18:48 수정 2016-04-10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