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덕환 <14> 에덴재단 성장 뒤에는 아내의 기도와 헌신

입력 2016-04-11 18:04 수정 2016-04-11 18:18
숱한 어려움을 함께 견디며 기도로 힘이 되어준 부인 이순덕 목사와 함께한 정덕환 장로. 강민석 선임기자

이번 연재를 하면서 아내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것 같다. 사실 오늘의 나와 에덴복지재단이 있기까지는 모든 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내의 눈물과 기도,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두 아들이 잘 자라 제 몫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아내 덕분이다.

27세 한창 나이에 전신마비 남편을 받아들이고 오랜 병구완과 남편의 온갖 성화를 온몸으로 받아낸 아내는 엄청난 고통으로 마음의 병을 얻었고 이로 인해 대수술을 여러 번 해야 했다.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하는 등 건강했던 아내가 병을 얻은 것은 모두 나로 인한 마음고생 때문이었다.

아내가 신앙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를 받지 못했더라면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가끔 이야기한다. 아내는 내가 목회자가 되어도 좋고 아니더라도 신앙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신학교 입학을 권했다. 그러나 내가 몸이 이런데 어떻게 공부하느냐며 거절을 했는데 그럼 본인이 하겠다며 신학교에 들어가 1997년 목사안수까지 받았다.

모든 것을 기도로 의지하고 원생들을 보살피던 아내는 파주 공사가 중단되고 아수라장이던 때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의사선생님은 전이가 심해 2년밖에 못 산다고 했다. 이미 그 이전에 병을 얻어 신장을 하나 떼어낸 아내였다.

모든 환경이 절망스러웠던 이 때, 병실을 찾아가자 아내는 핏기 없는 얼굴로 봉투 하나를 먼저 내밀었다. “건축은 잘못됐지만 쓰레기봉투 납품은 해야 하잖아요. 이거 비닐 원료값이니 가져가서 쓰세요. 조금씩 모아둔 거예요.”

사고 후 두 아이를 키우느라 안 해 본 일이 없고 손을 너무 많이 써 손가락 관절이 다 휘었던 아내는 유방암을 이겨냈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갑상선암이라고 했다. 평생 직원들 밥해주고 내 뒷바라지만 하며 기도해 온 아내에게 하나님은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는 언제나 죽음 앞에서 담담했다.

“여보. 당신이나 나나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어요.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 겁니다. 이미 죽음을 경험했기에 무엇도 두렵지 않잖아요. 이런 연단을 통해 이런 큰 사역을 맡겨주신 것이니 매사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도록 해요.”

아내는 에덴복지재단의 중요한 변화나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기도 가운데, 또 꿈 가운데 감동을 얻고 중요한 판단과 결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파주로 이전할 때도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 “마구간이 차면 장소를 옮겨야 하느니라”란 응답을 받고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아내는 숱한 병치레를 하면서 영성은 더욱 깊어졌다. 병원에서도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나 ‘치유와 기적의 하나님’을 자신의 몸으로 입증해 보였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 분명한 것을 아내를 통해 알게 된다.

지금 아내(이순덕 목사)는 파주 공장에 설립된 에덴선교교회 담임을 맡아 특수목회를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전 직원을 대상으로 드리는 예배 인도도 아내 몫이다.

또 원래 우리 공장이 있었던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설립한 에덴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도 일하며 장애인들이 자립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난 매주일 아내의 설교를 들으며 기도의 배우자, 믿음의 배우자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아내에게 못해준 관심과 사랑을 나누리라 다짐하곤 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