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 경제단체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아무래도 이번 총선에서 여당 의석이 과반이 될 가능성이 높아 노동개혁법안 등 정부가 개혁정책을 펴는데 도움이 될텐데, 이는 기업에도 유리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당 비례대표에 노동계 인사들이 몇 명 있는 데다 내년 대선도 있어 기업들은 여러모로 힘들 겁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그의 말대로 총선 결과가 어찌되든 재계에 대한 압박이 심해질 것 같다. 최근 핫이슈로 부상한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국 뉴욕주는 지난 4일(현지시간) 2018년까지 뉴욕시 최저임금을 15달러(약 1만7000원)로 인상하기로 했고, 영국은 일종의 최저임금인 ‘생활임금’을 지난 1일부터 시간당 7.2파운드(약 1만1900원)로 올렸다.
앞서 독일, 러시아, 일본 등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렸거나 대폭 인상을 약속했다. 선심 공약들이 판치는 총선 국면에서 우리 정당들이 그냥 있을 리 없다. 야당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여당도 최저임금을 4년 내 시간당 8000∼9000원으로 올리겠다고(후에 9000원의 효과라고 해명) 약속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지난 7일 처음 열린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전원회의에 쏠린 국민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정치권 공약에다 최저임금 인상이 어느 정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단호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업 부담이 늘어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저성장이 지속돼 경영 어려움이 갈수록 커지는 현 상황에서 재계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글로벌 경제가 경제 논리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재계 역시 ‘임금 억제=기업 성장’이라는 과거의 타성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 금리를 내려도 소비가 늘지 않고 국민의 소득정체가 기업의 이익과 투자 창출에 타격을 주는 시대다.
지금은 당연시된 주5일 근무제뿐 아니라 정년연장, 육아휴직 지원, 대체휴일제 등 시대 흐름을 좇는 공익 제도 도입에 재계는 매번 태클을 걸었다. 근로자 여가와 여성인력 활용이 소비 창출과 지속성장의 중요 요소라는 점에서 재계의 완고한 자세는 시대역행으로 비치곤 했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재계는 2007∼2015년 9년 연속 동결 이하(2009년은 삭감)안을 협상장에서 제시했다. 올해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아 10년 연속 동결안 제시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3%(2012년)가 되건 6.5%(2010년)가 되건 근로자 최저임금을 묶어두겠다는 속셈이다. 뉴욕주의 15달러 최저임금 인상안에 90여곳의 뉴욕주 기업과 재계 단체들이 지지했다고 한다. 한·미 기업 간 경영이념이 다를 리는 없다. 임금 인상은 구매력을 높여주는 부분도 있기에 세제 혜택, 정부 지원 등의 방안을 병행한다면 영세사업체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재계도 공익추구와 상생이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미국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2011년 행한 ‘이 나라에 자신의 힘만으로 부유해진 사람은 없다’는 제목의 연설은 그런 점에서 되새겨볼 만하다.
“기업인 당신은 나머지 우리가 비용을 부담한 도로로 당신의 제품을 시장으로 옮겼다. 당신은 나머지 우리가 교육비용을 부담한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당신의 공장이 안전한 것은 나머지 우리가 비용을 댄 경찰·소방서 덕분이다. 당신이 크게 돈을 번다면 그동안 도움 받은 만큼 다음 세대를 위해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암묵적인 사회계약의 일부다.”
고세욱 산업부 차장 swkoh@kmib.co.kr
[뉴스룸에서-고세욱] 스스로 부유해진 사람은 없다
입력 2016-04-10 17:43 수정 2016-04-10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