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고, 신동엽은 ‘4월은 갈아엎는 달’에서 ‘사월은 일어서는 달’이라고 읊은 바 있다. 흔히 종교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다는 말을 하지만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후배가 물었다.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실은 나도 그렇다고 대답하면 거기서 대화가 끝났을 텐데, 며칠 전 ‘당신의 한 표는 4280만원 가치’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읽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후배에게 한마디 건넸다.
우리들의 한 표가 우리 연봉보다 많은 40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하니 봄꽃 구경을 가더라도 아침 일찍 서둘러 투표하고 가야지 않겠냐고. 그러자 후배가 재차 물었다. 어차피 누구를 찍어도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된다고들 하던데 달라지는 게 있겠냐고. 실은 나도 누구를 찍어야 할지 어떤 정당을 지지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라지는 게 반드시 있을 거라고 소신을 갖고 답하지는 못했다.
다만 옛날 양반의 장례 때 주인을 대신하여 곡하던 노비처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줄 수 있는 ‘곡비(哭婢)’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곧 세월호 2주기가 돌아온다. 그러나 무사히 돌아왔다면 첫 투표권을 행사했을 우리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없다. 살려주십시오, 라고 외치며 머리를 조아리며 큰절을 하는 정치인들과 삭발식까지 하며 한 번 더 믿어달라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세상은 온통 피고 지는 꽃들로 환한 봄인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안중근은 30살 때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쏘았고 윤봉길은 25살 때 일본군 지휘부에게 폭탄을 던졌습니다.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였다면, 그들이 목숨을 던지진 않았을 겁니다. 투표권의 무게는, 독립 운동가들이 던진 목숨의 무게와 같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의 트위터 글이다.
안현미(시인)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곡비
입력 2016-04-10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