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이 동네 안 살아도 투표 가능한 거죠?” “네, 이쪽 관외투표소로 서시면 됩니다. 신분증 꺼내주세요.”
4·13총선을 닷새 앞둔 8일 오전 10시 사전투표소가 개설된 서울역 청사 3층에는 출근시간이 지났는데도 투표하러 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대부분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찾은 외지인이었다.
2013년 4·24 재·보궐 선거에서 도입된 후 총선에서는 처음 치러지는 사전투표제 열기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유권자가 거주지와 무관하게 전국 3511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되면서 사전투표 첫날부터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저조한 20, 30대도 속속 투표장에 나타났다.
대전에 사는 대학생 김모(23·여)씨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남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김씨는 “전날 서울에서 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마침 사전투표일이라기에 투표를 했다”며 “과거에는 야당을 응원했는데, 이번에 서로 쪼개지는 걸 보고 당을 달리 찍었다”고 말했다.
동료와 함께 서울 여의도동 주민센터를 찾은 직장인 이모(23·여)씨도 “젊은 사람들 투표가 저조한데 이번 선거만은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기 위해 손등에 빨간 도장을 찍어 나왔다.
강남구의 한 투표소 선거관리위원은 “이른 아침에는 중·장년 관내투표자(지역주민)들이 많았는데 출근 시간 이후에는 젊은 관외투표자들이 7대 3 비율로 많았다”며 “대부분 다른 지역에 사는 직장인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투표소에서는 점심시간 등 ‘막간’을 활용해 투표 행렬에 동참한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직장인 최모(33·여)씨는 “13일에는 할머니댁에 가기로 해서 미리 시간 날 때 투표하고 가려고 한다”고 했고, 수원에 사는 직장인 김범석(45)씨도 “투표 당일에는 가족들과 놀러 갈 것”이라며 미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투표 당일 근무를 하거나 가족여행 등이 예정된 유권자들도 잇따라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식당에서 일한다는 오모(65·여)씨는 “투표 당일은 쉬는 날이라 식당에 손님이 많을 것 같아 미리 투표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에 사는 한모(63·여)씨도 “10일부터 14일까지 가족여행을 가게 돼 투표하러 나왔다”고 했다. 주부 최모(57)씨는 인근 문화센터에 교양강좌를 등록하러 나왔다가 ‘겸사겸사’ 투표를 하기도 했다.
투표 열기는 뜨거웠지만 각 정당을 향한 민심은 차가웠다. 여의도 주민인 권모(78)씨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1번(새누리당)을 찍었다”면서도 새누리당 지도부의 ‘읍소전략’에 대해선 “뭘 사과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치적 쇼”라고 일축했다. 평소 야당을 지지해 왔다는 주부 홍모(42)씨는 “지역구만큼은 이제 사람을 보고 뽑으려고 한다”고 했다.
홍씨처럼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정당을 따로 선택하는 ‘교차투표’ 사례도 속속 나왔다. 서울역에서 투표한 임모(77)씨는 “정치판이 개판이다. 차제에 싹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당 투표를 했다”면서도 “지역구에선 다른 당을 찍었다”고 했다. 우모(64)씨도 “정치권에 새 바람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지역구에선 현역 의원이 잘하고 있어 서로 다른 당을 찍었다”고 말했다. 우씨는 “여당 텃밭인 대구에서도 ‘정치가 이제 좀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귀띔했다. 사전투표는 9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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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8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