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車 급발진 의심 사고 법원도 ‘알쏭달쏭’…형사소송 “운전자 무죄”-민사소송 “패소”

입력 2016-04-09 04:00 수정 2016-04-10 19:42

차량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한 사고에 대해 법원이 운전자의 무죄를 선고했다. 불가항력적인 급발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운전자의 과실이 명쾌히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민사소송 절차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는 운전자의 패소로 결론 나는 경우가 많다. 형사적으로는 급발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민사소송에서 급발진 결함이 자동차에 있다는 사실도 입증되지 않았다. 사람의 잘못도 없고 차량의 잘못도 없다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원인 모를 사고의 희생자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운전자는 죄가 없다

회사원 송모(48)씨는 지난해 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세차장에서 자동세차가 끝나자 자신의 쏘렌토 차량을 출구 방향으로 약간 우회전했다. 이 순간 차량이 급가속하며 앞으로 돌진, 다른 차량을 세차하기 위해 서 있던 김모(43)씨를 들이받았다. 김씨는 이 사고로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에서 사고 당시 급발진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회신했다. 핸들과 변속레버, 가속·브레이크 페달 등에서 기능장애를 유발할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의견이었다.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 추출 결과에서도 충돌 5초 전까지 브레이크 페달이 밟힌 기록은 없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불가항력적인 급발진 가능성이라는 의심을 끝내 거두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이환승 부장판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송씨에게 지난 6일 무죄를 선고했다. 국과수의 감정 역시 본질적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차에도 책임이 없다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운전자가 책임을 면한 사례는 송씨가 처음이 아니다. 2005년 11월 서울 마포구의 음식점 골목에서 차량을 빠르게 몰아 1명이 숨지고 5명을 다치게 한 대리운전기사 박모(59)씨는 2008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011년 10월 70세 노인을 치어 숨지게 한 최모(71)씨도 대구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두 급발진 의심을 떨치지 못한 판결이지만 그렇다고 급발진 원인을 규명한 곳도 없다. 당시 최씨의 사건에서 국과수는 “급발진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 한국소비자원 등은 여러 차례 각종 차량의 급발진 원인 규명을 시도했지만 단 한 차례도 속 시원히 기계적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때문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가 이긴 판례가 없다. 대법원 관계자는 “급발진 사고라는 것이 민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대법원이 급발진을 인정해준 전례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블랙박스 등 여러 증거로 급발진 사고가 인정된 경우에는 합의로 끝나거나 하급심에서 조정이 이뤄진 경우가 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며 EDR 장착 여부 고지, 사고기록정보 제공 등이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급발진의 대안으로는 불충분하다는 평가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 김필수 회장(대림대 교수)은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EDR 데이터 생성도 되지 않아 실효가 없다”고 비판했다.이경원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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