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짓는 공장건축은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주어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건축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IMF의 후유증으로 자재값이 천정부지로 뛰니 건설사가 자재를 미리 사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해 사람 잘 믿는 나는 갖고 있던 정부지원금 6억원을 덜컥 건네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공사현장으로 가 보았는데 인부도 자재도 없었다. 사장이 돈을 받고 잠적해 버려 인건비를 못 받은 인부들이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사장을 찾으러 백방으로 다녔으나 찾을 수 없었다.
난 너무 걱정이 되어 급성신장염이 생길 정도였다. 아내와 나, 우리 에덴식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었다. 이렇게 피 말리는 4개월이 지난 뒤 웬 남자들이 몇 명 나를 찾아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저희 사장님이 저지른 불찰을 용서해 주십시오.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랬습니다. 지금 수감 중이신데 저희 직원들이 다시 회사를 세워보자고 뭉쳤습니다. 당장 공사를 시작해 최대한 빨리 완공하겠습니다.”
어리둥절했다. 우리의 기도가 상달돼 시공사 직원들이 공사를 해주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장애인단체 건물이고 정부지원금을 훼손 한 것에 큰 부담을 느낀 것 같기도 했다.
1999년 4월30일, 우리는 파주의 새집으로 기분 좋게 이사했다. 이렇게 좋은 시설에 우리가 살아도 되는지 모두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장애인들을 배려해 휠체어가 다니기 편하도록 문턱이 없이 설계되고 기숙사와 식당, 편의시설들이 황공할 정도로 좋았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나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나안땅에 들어오도록 축복해 주셨는데 초심을 잃지 않고 장애인 선교와 복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여기서 만족하고 느슨해지면 안된다고 나를 독려했다.
잘 지어진 파주공장에서 장애인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언론에서 새로운 각도로 다루어 주었다. 난 장애인들이 좋은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선진복지’임을 늘 강조했다.
장애인들과 많이 생활하다보니 이성에 대한 관심도 갖고 가정을 이루고픈 열망도 큰데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원생들도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여겨 서로 사귀는 것을 독려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눈이 맞아 데이트도 했고 이어 결혼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파주로 이주하기 전에 이미 5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매년 결혼식이 이어졌다. 나는 주례를 서 주며 새로운 부부탄생을 마음으로 기뻐하고 축하했다. 이렇게 에덴을 통해 가정을 이룬 장애인부부가 50쌍을 훌쩍 넘는다. 그래서 우리 에덴에서 가장 잘되는 사업이 ‘연애사업’이라고 내가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한다.
선진국의 바로미터는 장애인복지 수준과 직결된다. 사업을 하고 장애인 관련 직책을 맡으면서 해외 선진국의 장애인 시설과 복지상황을 둘러 볼 기회가 많았는데 참 부러웠었다. 지금 한국의 수준도 해외 선진국과 견주어 많이 좋아졌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고 무시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장애인공동체를 여전히 ‘혐오시설’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개선은 어려서부터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사회적 제도가 서로 맞물려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복지로 가는 지름길임을 나는 확신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정덕환 <13> 장애인 ‘연애 사업’ 적극 지원… 50쌍 넘는 부부 탄생
입력 2016-04-10 18:45 수정 2016-04-10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