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 목회 25년… “어르신들 아들·딸로 삽니다”

입력 2016-04-10 19:08 수정 2016-04-10 21:20
전북 무주군 부남면 가당교회 입구에서 김길선 목사와 최미숙 사모가 활짝 웃고 있다.
김 목사(뒷줄 오른쪽)가 김성구 예원교회 목사(앞줄 오른쪽)와 함께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지압을 해드리며 전도하는 모습.
“우리 이성녀 어머니는 나이를 거꾸로 드시는지 하루하루 젊어지셔 그래∼. 며칠 안 보면 못 알아보겄어요∼.”

8일 오전 전북 무주군 부남면 가정마을의 마을회관. 이 마을 가당교회 김길선(62) 목사의 구성진 말솜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르신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백발의 이성녀(97) 할머니는 “남세스럽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깊이 패인 주름살을 씰룩거렸다.

이번에는 품앗이 전도에 나선 옆 마을 예원교회 김성구 목사가 지압봉을 꺼내들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손은 따뜻헌디 손끝이 차가우시네.” “만날 그려∼. 머리도 자주 아프고. 그래도 목사 양반이 지압해주니께 소화 안 되던 것이 쑥 내려갔구먼∼.” 김애자(72)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같은 시간 주방에선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루 전 무주 5일장에 다녀온 가당교회 최미숙(62) 사모는 “언니(할머니)들에게 싱싱한 홍합탕을 대접하겠다”며 커다란 냄비를 들어올렸다. 김길선 목사 부부의 주 사역지인 마을회관은 어르신들의 박장대소로 언제나 화기애애하다.

가정마을 주민들의 평균연령은 78세다. 아침이면 연로한 몸을 이끌고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 모인다. 10시쯤 김 목사도 도착한다. 그는 “마을회관을 내 집 드나들 듯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농촌지역 목회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 부부가 무주군에서도 깊은 산골 가정마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25년 전이다. 전임 교역자가 타지로 떠나면서 부임한 예배당은 돼지 우리를 개조해 만든 허름한 창고건물이었다.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높은 언덕에 교회가 있어 김 목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지게를 지고 아랫마을 우물까지 오가야했다. 나이 서른일곱의 젊은 부부가 세 살배기 딸과 생후 100일 된 아들을 안고 전도하러 다닐 때면 복음을 전하기도 전에 “핏덩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려고 여기까지 내려왔냐”며 걱정과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하나님께서 복음의 열매를 위해 우리를 가정마을에 보냈다’는 소명 의식은 날로 강해졌다.

김 목사는 농사일이며 도배, 이미용 봉사 등 마을 어르신들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초고령 지역이다보니 위급한 상황이 일어날 때도 많았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아 교회 승합차는 구급차로 항시 대기 중이다.

최 사모는 새벽기도회가 끝난 교회 주방에서 찐빵, 옥수수, 술빵 등 주민들을 위한 새참거리를 만들어 논두렁 밭두렁을 넘나들며 간식배달에 나섰다. 씨족 문화가 강하고 마을 곳곳에 산당이 있을 만큼 우상숭배가 만연한 가정마을에서 김 목사 부부는 어르신들의 아들딸로 다가갔다. 그러자 조금씩 복음의 열매가 맺혔다.

김 목사는 45년 동안 무당으로 살아온 옆집 할머니가 회심하던 날을 가당교회 목회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10년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한 번은 몸이 편찮으시다기에 아내가 안아드리면서 기도했는데, 갑자기 ‘평생 큰 하나님을 두고 잡신들만 쫓아다녔다’고 펑펑 우시더라고요. 할머니는 이튿날 잡다한 우상과 굿에 쓰는 도구들을 전부 마당에 쌓아 불태우셨어요. 우상을 뒀던 자리에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놓으셨지요.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라고 전도하시면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주일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예배를 드리러 오셨는데, 지난해 천국에 가셨습니다.”

올해부터 최 사모는 마을회관에서 한글도 가르친다. “어르신들 중에 글을 모르는 분들이 아직 계세요. 감사헌금 봉투에 이름 적고 기도제목을 쓰고 싶어 하시는데, 곧 그날이 올 겁니다.”

가당교회에는 현재 15명의 어르신 성도가 출석하고 있다. 김 목사는 “노인들은 ‘밤새 안녕’이라고 하지 않나.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며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투망을 던져 사람 낚는 어부처럼 주님 앞으로 모셔오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무주=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