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공무원이다. 정부서울청사의 보안 관리는 공시생(公試生)에게 뚫릴 만큼 나태했지만 사건 발생 후 공무원들이 보여준 ‘면피 정신’은 너무나 투철했다. 수험생이 정부청사에서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의문은 두 가지였다. 사무실 도어록은 어떻게 열었으며, 컴퓨터 암호는 어떻게 풀었을까. 해답은 허무했다. 도어록 비밀번호는 문 옆에 적혀 있었고 컴퓨터에는 애당초 부팅 암호조차 없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에 대처한 대한민국 중앙정부 공무원의 행태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3월 30일 외부인 침입을 인지하고 4월 1일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1주일 수사를 벌여 채용관리과 출입문 옆에 비밀번호 4자리가 적혀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 비밀번호는 수사 의뢰 전날인 3월 31일 공무원의 지시로 청소원이 지운 뒤였다. 이 사무실은 정부를 유린한 범죄 현장이다. 공무원들은 직접 그 현장을 훼손했고 이를 경찰에 알리지도 않았다. 관리 책임을 감추려는 꼼수가 훤히 보인다.
수험생 송모(26)씨는 채용관리과 컴퓨터 2대로 합격자를 조작했다. 혁신처는 당초 “송씨가 암호 해제 기법을 사용한 것 같다. 직원들이 보안규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해명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국가정보원 보안지침에 따라 컴퓨터에 있어야 할 4단계 암호 중 두 가지가 설정돼 있지 않았다. 1단계인 부팅 암호마저 없어 쉽게 뚫렸다.
이 사건은 그동안 정부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가려지고 축소되고 두루뭉수리 넘어갔을지 짐작하게 한다. 이런 행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앗아간다.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송씨는 공무원시험 응시자격을 얻기 위한 1차 시험에서 문제지와 답안지를 빼돌려 고득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황당한 일이다. 국가고시 관리도 정부청사 보안만큼이나 허술했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상응하는 징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사설] 허술했던 정부청사, 투철했던 ‘면피 정신’
입력 2016-04-08 17:54 수정 2016-04-0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