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송금·이체 허용, 양지로 나오게 한다더니… 환전상 양성화 아직 먼길?

입력 2016-04-08 04:02

“우리가 그걸 뭐하려고 합니까.”

지난 6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비교적 큰 규모로 영업을 하고 있는 이곳의 주 업무는 환전이다. 지난달 22일부터 환전업자들도 외화 송금과 이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지만 이 환전소는 남의 일이라는 반응이다.

환전소 직원은 “우리를 찾는 분들은 주로 중국 등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시는 분들과 관광객”이라며 “이체나 송금 서비스를 요청하는 고객은 없다”고 했다.

지난달 15일 소액외화이체업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외국환거래법 시행령 및 거래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일주일 뒤 관보에 게재됐다.

기획재정부는 자금세탁과 환치기를 비롯해 불법거래의 온상으로 꼽히고 있는 환전업을 양성화하겠다며 ‘소액외화이체업’을 추진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환전업자는 매년 증가해 2014년 말 1387개가 됐다. 주로 중국인 거주지역인 서울 영등포, 구로와 명동 일대 관광지 등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그러나 관리기관이었던 한국은행은 검사 인력이 부족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불법송금과 밀수출, 자금세탁 등 불법거래의 통로로 악용됐다.

기재부는 환전업자에게 외화이체업을 겸영할 수 있게 하고 외환 수수료도 낮춰주는 대신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관리감독기관도 한국은행에서 관세청으로 바꿨다. 지난해 10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환전업 개편방안을 공개했고 두 달 뒤인 12월 외국환거래법 시행령을 발표했다. 시행령은 환전업자들이 관련 설비를 갖춰 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면 이체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관련법이 개정되면 은행과의 업무협약 없이 독자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다.

하지만 7일 기재부 관계자는 “외화 송금·이체업 겸영에 나선 환전소는 하나도 없다”고 전했다. KEB하나은행에 한 건의 상담전화가 왔을 뿐 국민·우리은행 등 다른 은행들은 상담 전화조차 받은 바 없다. 환전업 양성화라는 정부의 당초 취지가 무색한 현상으로 탁상행정의 단면을 드러낸다.

은행과 환전업자들은 정부가 시장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고 대책만 내놨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양성화의 대상으로 꼽은 영세 환전업자들은 이체 업무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금융 전문가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체를 할 경우 씨티은행 등 중계은행이 필요한데 어떤 은행이 영세 환전업자를 믿고 거래하겠느냐”며 “또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전소 관계자들도 회의적이다.

명동의 또 다른 환전업자는 “환전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이체나 송금 서비스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해당 서비스를 요청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면 고민하겠지만 지금으로선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라며 한발 물러서 있다. 환전업자들의 요청이 오면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런 문제까지 어떻게 일일이 예상할 수 있겠느냐”며 “은행과 사업희망업체들과 발전적인 모델을 만들기 위해 대화 중”이라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