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전진기지 된 보스니아… 내전의 땅 다시 화약고로

입력 2016-04-07 21:32
보스니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새로운 근거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4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지를 표방한 한 보스니아인이 무장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2월 보스니아 동북부 곤야 마오차 지역의 한 주택에 IS 깃발이 걸려 있는 모습. 보스니아tv1·브레이트바트
“아버지가 죽더라도 전 기도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진 이교도니까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이브로 쿠푸로비치는 집을 떠났다. 남긴 흔적이라곤 없었다. 그는 ‘새 나라’를 향해 떠나기 전 자신의 사진을 모두 찢어버렸다. 샤리아법이 사진 찍는 걸 금지했다는 이유였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 열아홉이던 아들이 떠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간신히 한 장 남은 아들의 다섯 살 적 사진을 바라보며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아버지 세피크(58)는 잠을 못 이룬다.

1990년대 내전을 겪은 뒤 정치적 황무지로 남은 발칸반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보스니아 지역이 IS를 비롯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새로운 은신처로 변해가고 있다. 내전 중 확산된 이슬람 교세와 전후 복구에도 불구하고 60% 넘는 청년실업률이 주원인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유럽연합(EU) 국경 바로 너머인 이곳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대원을 모집하고 극단적인 이슬람 교리를 설파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전했다.

◇‘IS의 안식처’가 된 발칸반도…이슬람 극단주의 창궐=보스니아는 이미 많은 이슬람 무장단체 대원을 배출했다. 시리아 북부 최대 규모의 IS 훈련기지 사령관이었던 바요로 이카노비치를 비롯해 알누스라전선의 지도자급 인사 누스레트 이마모비치도 보스니아 출신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발칸 전문가로 일했던 존 쉰들러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보스니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안식처”라고 설명했다.

국경 근처 북부지역에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창궐해 있다. 지난해 이 지역의 한 가정집에 IS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이 걸린 게 TV방송 화면에 포착돼 파문이 일었다. IS를 지원할 경우 최고 징역 10년에 처하도록 법이 강화됐으나 별 소용이 없다.

유로폴은 올해 초 “IS가 병사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근거지로 발칸반도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강경 수니파인 살라피스트가 보스니아 내 수십 개 지역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스니아 검찰 역시 보스니아 북부에서 40여 가구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살고 있으며 IS 상징물이 평범한 가정집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보스니아의 이슬람 지도자급 인사 37인은 파리테러 직후인 지난해 12월 “모든 증오와 폭력에 반대한다”며 IS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으나 곧바로 IS의 표적이 돼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IS는 영상에서 “지도자들의 목을 자르겠다”고 협박했다.

◇잡기엔 너무 커져버린 불길=아버지를 떠났던 아들 이브로 쿠푸로비치는 지난 2월 26일 인터폴에 ‘테러리즘 범죄와 연관된 테러단체 조직’ 혐의로 수배됐다. 아버지는 그토록 그리던 아들의 최근 모습을 웹사이트의 수배자 명단 속에서 바라봐야 했다. 이브로처럼 보스니아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를 향해 떠난 이들은 200∼300명 규모다. 벨기에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미 약 30명이 목숨을 잃고 50명이 보스니아로 돌아왔다. 지난해 4월에는 보스니아인 12명이 IS를 지원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부는 64개의 불법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공동체가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1일부터는 특수부대가 직접 조사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도 이미 늦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