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입사지원서에 결혼 여부 묻는 기업들

입력 2016-04-07 21:24
7일 현재 채용을 진행 중인 GS샵(위)과 성주그룹(아래)의 입사지원서 캡처 화면. 두 곳 모두 지원자의 ‘결혼 여부’를 묻고 있다. 각 사 홈페이지 캡처

아직도 채용과정에서 결혼을 했는지 묻는 기업들이 있다. 7일 현재 채용이 진행 중인 기업들의 입사지원서를 확인한 결과 신세계그룹, GS샵, 성주그룹 등의 입사지원서에는 ‘혼인 여부’를 표시하는 칸이 있었다. 상반기 서류 접수를 마감한 모나미, 현대로지스틱스, 삼양식품 등도 혼인 여부를 표시한 입사지원서를 받았다.

혼인 여부를 묻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혼인 여부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제 ‘차별 행위’가 일어났는지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을 했는지 묻는 것만으로도 ‘차별 행위’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 이윤상 시민인권보호관은 지난 5일 “채용 면접시험에서 결혼 여부를 묻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서울시에 관련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 보호관은 “결혼 여부를 묻는 게 차별 의도가 없었더라도 기혼 여성에게 편견을 가진 다른 면접위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입사지원서 혼인 여부 표시 자체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 구직자들은 입사지원서의 혼인 여부 표시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지난해 결혼한 A씨(28·여)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취업은 어느 정도 포기했다”며 “기혼자로 표시하고 지원하기에는 출산·육아 등이 눈치 보여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결혼식을 먼저 올리고 혼인신고는 입사 뒤로 미루는 ‘혼인신고 유예’ 사례도 봤다고 했다. 대학원생 B씨(26·여)도 “기혼자는 취직이 어려울 것 같아 취직 이후로 결혼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인권위가 지난 1월 발표한 ‘보건의료분야 여성종사자 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간호직군 응답자의 58.3%, 여성전공의 응답자의 77.8%가 ‘모집·채용 시 미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혼인 여부를 표시하는 것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정보이며, 채용 과정에서 혼인 여부를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여성 구직자들이 채용과정에서 겪는 차별 사례를 조사해 오는 10월 발표할 예정이다. 인권위도 ‘입사지원서의 혼인 표기’를 포함한 채용 과정 차별 실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채용 과정에서 직무와 무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혼인 여부를 기재했던 동부그룹은 올해 혼인 여부, 연고지, 가족관계를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제외했다. 그룹 관계자는 “개인정보 수집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항목을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