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현 칼럼] 사랑의 결핍을 치유하는 단단한 믿음

입력 2016-04-08 18:25

“남자는 복종을 힘들어하고 여자는 뭔지 모를 결핍을 갖고 있다”는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라캉의 말처럼, 심리상담의 현장에선 원인 모를 끊임없는 사랑의 결핍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심리 상담실을 찾아온 40대 초반의 여성인 A는 너무나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고 이것이 채워지지 않자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들은 이런 A에 대해 지쳐 있었다. 남편의 사랑이 부족하고 모든 불행이 남편에게 있다고 믿는 A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지나치게 일에 열중했고 성공에 집착했다. 그녀는 시골에 가서 살더라도 사랑을 좀 실컷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고 남편은 아내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호소했다.

상담과정을 통해 A는 성인애착장애를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성인애착장애자들은 사랑을 간절히 갈구하지만 어떻게 사랑의 관계를 형성해야하는지 모른다.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공허감과 외로움을 남편의 문제로 돌리고 남편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성인애착장애를 가진 A는 남편이 어떤 노력을 해도 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남편이 노력하면 이것을 좋게 평가하기보다 오히려 분노를 느끼고 진작 그렇게 하지라며 가치를 평가 절하했다.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애를 쓰면 더 화를 내고 “이렇게 변화될 수 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느냐”며 변화돼도 문제 상황이 해결되지 못했다.

독일의 가족치료사 버트 헬링어는 사랑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의 문제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형성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것의 원인이 어린 시절 애착의 문제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사랑은 상처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랑이 넘치는 태도와 그로인한 정서적 반응은 가족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상처를 가진 사람은 따뜻한 정서적 결합이 어려울 수 있다. 애착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파트너를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한다. 친밀감이라는 감정을 원하면서 동시에 부담을 느낀다. 이렇게 애착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성인이 된 후 모순 된 행동으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게 된다.

애착은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본성이다. 사람마다 각각의 애착 유형은 다르며, 이것은 아이와 부모 사이의 애착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 자녀의 욕구를 섬세하게 인식하고 보살피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간적 분리를 비교적 수월하게 이겨낸다는 것이다. 슬픔과 그리움의 감정을 어느 정도 갖지만 한시적인 공간 분리가 깊은 절망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일정 기간 헤어져 있더라도 관계를 무사히 지속할 수 있다. 이들은 관계에 대한 실망을 경험해도 다시 신뢰 깊은 관계를 갖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모든 애착 능력과 애착 행동은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부모 또는 다른 친밀한 보호자에 의해 결정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오랜 인생 동안 불안정 애착관계를 형성할 확률이 매우 높다. 착하고, 순종적이며 그리고 모범생 아이를 만들기 위해 폭력, 폭언, 협박, 위협, 애정 결핍, 죄책감을 부여하면 불안정애착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부모에 대한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계속 거부당한 경험도 불안정애착을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망하였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에게 사랑 받을 수 없다고 여겼던 A는 어린 시절의 관계 패턴을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면서 성장한 A는 남편에게도 계속해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남편이 그녀에게 느끼는 실제 사랑의 크기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A는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가 오로지 남편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변화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만들어졌다. 이 믿음은 언제든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는 확신이다. 어린 자녀가 외출한 부모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짐으로 부모의 부재를 버티고 안정된 심리상태에서 기다릴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남편이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을 통해 회복이 이루어졌다.

최광현<한세대 심리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