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민태원] 금연 정책과 ‘비명 효과’

입력 2016-04-07 18:44 수정 2016-04-07 21:48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 출장 때 담배 판매점에서 접했던 무시무시한 흡연 경고그림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목에 시커먼 암덩이가 튀어나온 후두암 환자, 누렇게 변색되고 썩어버린 치아 사진에 ‘담배 피우면 죽는다’는 직설적인 문구까지. 충격 그 자체였다. 이걸 보고도 담배 맛이 날까 생각했다. 프랑스는 2011년부터 16개의 경고그림을 도입해 담뱃갑에 넣고 있다. 또한 담배광고·판촉과 후원도 금지했다. 실제 담배 가게 진열대 주변에 우리나라에선 흔한 화려한 네온사인 담배광고를 전혀 볼 수 없었다. 프랑스는 조만간 호주가 2012년 시작한 ‘무광고 포장(Plain packaging) 담배’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오는 12월부터 담뱃갑 경고그림을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며칠 전 10개 시안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림의 혐오 정도를 두고 갑론을박 말들이 많다.

금연단체는 수위가 낮아서 금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애연가와 담배제조·판매업자들은 그림이 지나치게 혐오스럽고 영업에 방해된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그림의 담뱃갑 상단 배치도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배기업들은 법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담뱃갑 경고그림의 효과는 제도를 도입한 여러 나라들에서 입증됐다. 2001년 세계 최초로 경고그림을 부착한 캐나다에선 2000년 24%였던 흡연율이 5년 만인 2006년 18%까지 떨어졌다. 그림은 크고 혐오스러울수록 더 효과적이라는 게 증명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지나치게 혐오스러워선 안 된다’는 조항을 법조문에 넣어서 수위를 조절했다.

금연 전문가들은 첫 시도인 만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금연효과를 높이려면 시행 과정에서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경고그림 면적을 담뱃갑의 30%(문구까지 합쳐 50%)보다 더 넓히고 18개월 혹은 24개월로 추진 중인 그림 교체 주기를 1년이나 6개월로 단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체 주기가 너무 길면 그림에 무감각하게 돼 금연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다른 금연 정책도 동시에 추진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특히 정부가 1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편의점 내 불법 담배광고 규제’ 약속은 하루빨리 실행돼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2014년 9월 이 같은 내용의 금연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편의점업계 반발에 발목 잡혀 진척이 없다.

최근 방한한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도 우리나라가 2005년 비준한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의 ‘담배광고 판촉 및 후원 금지 조치 이행’을 아주 낮게 평가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10월 공언했던 ‘14개비 소량포장 저가 담배와 가향(加香)담배 판매 금지’ 대책도 6개월이 다 돼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담뱃값 인상을 틈타 편법으로 내놨던 ‘14개비 2500∼3000원짜리 담배’를 취급하지 않겠다던 편의점들은 슬그머니 다시 팔고 있다. 복지부는 담배사업법 주무부처인 기재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담배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비명 효과(scream effect)’라는 게 있다. 정부의 담배규제 정책이 강해질수록 담배제조·판매업계가 민원이나 소송 등을 제기해 정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들의 ‘악 소리’는 커질 것이다. 금연정책 전문가 이성규 박사는 “하지만 담배업계의 ‘비명’이야말로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건당국이 받을 수 있는 큰 찬사 중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