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온난전선이 지나간다

입력 2016-04-07 18:39

저 비가 그치고 나면, 기온이 오를 것이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내린다고 하는 것보다 흩뿌린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비.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떠올려 본다. 서로 다른 성질의 공기 덩어리가 만나서 생기는 날씨의 경계를 전선이라고 부른다.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는 온난전선, 그 반대의 경우가 한랭전선이다.

온난전선은 밀도가 낮고 따뜻한 공기가 찬 공기 위로 완만하게 올라타면서 형성된다. 부드럽고 가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비가 그치면 따뜻해진다.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비가 내리는 것을 보니, 지금 온난전선이 지나가는 중인가.

사람을 처음 대할 때는 주로 아름다운 면과 좋은 점만 보였다. 속없이 덥석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첫인상을 좋게 하려고 애쓰기 때문일 수 있다. 선한 의도와 좋은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동화 같은 세상에 대한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공기를 밀고 들어오듯, 설레는 기대와 호감 속으로 실망이 파고든다. 한랭전선이다. 소나기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고 마침내 기온이 급강하한다. 마음이 차가워지고 현실의 혐오스러운 진짜 얼굴을 보았다고 믿는다.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들 대부분은 그러했다.

봄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닿는 곳마다 수액이라도 맞은 듯 나무와 풀은 생기가 돈다. 저 멀리 매화인지 벚꽃인지 알 수 없는 꽃나무의 뒷모습이 보인다. 나무에 뒷모습이나 앞모습이 있을 리 없겠지만, 남의 집 안뜰에 서 있는 나무이니, 담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 뒷모습이라고 우겨본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너의 뒷모습. 순하게 비를 맞고 서 있는 너의 뒷모습이 기특하다. 사람에게도 앞모습이 있고 뒷모습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도 온난전선이 지나가길 바란다. 기대를 낮추면 마음의 온도는 올라갈 것인가.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