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맛있는 녀석들

입력 2016-04-07 18:42

유민상 130㎏, 김준현 120㎏, 문세윤 120㎏, 김민경 80∼90㎏.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은 저런 몸무게를 가진 개그맨 4명이 음식점에 앉아 계속 먹는 프로그램이다. 방송 1년 만에 ‘먹방(먹는 방송)의 대세’가 됐다. 몸무게는 몇 달 전 수치인데 지금은 더 늘었을지 모른다. 이들은 이 프로를 촬영하며 진짜 많이 먹는다.

‘청국장·탕수육’편에서 4명은 청국장 11인분을 먹어치우고는 식당을 옮겨 탕수육(大·4인용) 3그릇, 꽃등심 탕수육(大) 1그릇, 짜장면 2그릇, 냉면 2그릇 등 20인분을 더 먹었다. ‘치킨’편은 5마리를 먹는 장면이 방송됐지만 촬영하며 실제 먹은 건 8마리라고 한다. 만두를 먹은 ‘딤섬’편 계산서에는 45만1200원이 찍혀 있었다.

이 프로는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많이만 먹는 게 아니라 맛있게 먹는 나름의 비법을 소개한다. 주로 우리의 건강 상식을 파괴하는 것들이다. ‘돈가스’편에서 김준현은 빵에 버터를 듬뿍 바르더니 그 위에 설탕을 쏟아붓고는 한입에 삼켜버렸다. 시청자게시판에는 “먹어도 안 찌는 날씬한 것들의 먹방보다 진실하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원조 먹방인 MBC ‘찾아라! 맛있는 TV’는 2일 종영했다. 16년간 맛집을 알려주다 스마트폰에 맛집 정보가 넘쳐나자 막을 내렸다. 대신 ‘맛있는 녀석들’이 뜬 것은 저렇게 먹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건강하려면 피하라는 음식을 무슨 소리냐는 듯 먹어대고, 그걸 보면서 시청자는 ‘금지된 장난’의 쾌감을 맛보고 있다. 아내는 이기적이다. 가족들에겐 “이건 살찌니 먹지 마라, 저건 나쁘니 먹지 마라” 하면서 저들이 먹는 건 재방송까지 챙겨 본다.

비만과의 전쟁, 나트륨과의 전쟁을 벌여온 정부가 7일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가공식품을 통한 설탕 섭취가 위험수위라며 ‘당류 저감 종합대책’을 내놨다. 이런 전시(戰時)에 우리의 식욕을 대신 풀어주고 대리만족을 선사하려는 개그맨들의 ‘전우애’가 눈물겹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