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사 뚫은 공시생, 합격자 조작 어떻게… USB 꽂자 정부 컴퓨터 비밀번호가 풀렸다

입력 2016-04-06 22:15 수정 2016-04-06 22:24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공무원 시험 합격자 서류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송모씨가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출입증이 필요한 2개의 건물 출입구와 얼굴 대조 시스템, 비밀번호가 걸린 사무실 문, 컴퓨터 보안까지 정부 청사의 5중 보안이 20대 ‘공시생’(공무원 시험 응시생)에게 무기력하게 뚫렸다. 그는 범행에 성공한 지난달 26일뿐만 아니라 이틀 전인 24일에도 침입해 컴퓨터 접속을 시도했다. 26일에는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8시간30분 동안 사무실에 머물며 자신의 공무원 시험 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했다.

학생이 비밀번호가 걸린 사무실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공무원 출입증은 언제 어떻게 청사에 들어가 훔쳤는지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경찰은 내부 조력자 여부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USB 꽂자 컴퓨터가 열렸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공무원 시험 합격자 서류를 조작한 혐의(현주건조물 침입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로 체포한 송모(26)씨의 컴퓨터에서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 여러 개가 발견됐다고 6일 밝혔다.

송씨는 이들 프로그램을 담은 USB 메모리(이동식 컴퓨터 파일 저장장치)를 공채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에 꽂아 보안을 해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회계열 전공자인 그는 컴퓨터 비밀번호를 해제하는 방법과 관련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확보했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 4일 오전 6시13분쯤 송씨를 긴급체포한 제주도 모 대학 기숙사에서 그의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했다.

송씨가 범행에 성공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인사혁신처는 이날 긴급브리핑에서 지난달 26일 오후 9시2분 정부서울청사 16층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에 들어간 송씨가 이튿날인 27일 오전 5시35분까지 머물렀다고 밝혔다. 그는 담당 주무관 컴퓨터에서 문서를 찾아 시험 성적을 45점에서 합격선인 75점으로 고쳤다. 조작 데이터를 일치시키기 위해 또 다른 담당자인 사무관의 컴퓨터에도 접속했다.

황서종 인사혁신처 차장은 “먼저 주무관의 컴퓨터에서 수정한 자료를 출력한 다음 사무관의 컴퓨터에서 수정작업을 했고, 출력했던 자료는 파쇄하고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송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시35∼58분에도 담당 주무관 컴퓨터에 접속한 사실이 파악됐다.

홍해처럼 열린 정부청사 출입문

송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9시쯤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에 들어갈 때까지 한 차례도 의심이나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그는 4중으로 된 출입통제 시스템을 뚫었다. 가장 먼저 통과한 건 청사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외부 안내실의 보안검색대다. 공무원 출입증을 사용했다.

같은 출입증으로 청사 1층 입구 개찰구도 통과했다. 이곳은 2중 보안이 돼 있다. 출입증을 개찰구에 대면 문이 열리는 것과 별개로 위에 달린 모니터에 출입증 소유자의 얼굴 사진이 뜬다. 동일인 여부를 대조하기 위한 장치다. 당시는 토요일 밤으로 출입 인원이 많은 때도 아니었지만 보안요원은 송씨가 침입자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송씨는 범행에 사용한 청사 직원 출입증이 지난 2월 말부터 지난달 초 사이 청사 울타리 안 체력단련장 탈의실에서 훔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진 출입증은 3개였다. 외부인이 체력단련장에 들어가려면 안내실에서 방문 사유를 적은 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 뒤에도 입주 부처 직원이 동행해야 한다. 송씨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혼자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사 개찰구는 분실 신고가 된 출입증을 대면 경고음이 울리게 돼 있다. 송씨가 아무 문제없이 개찰구를 통과했다는 건 소유자가 출입증 분실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신고했지만 정상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비밀번호 걸린 문은 어떻게 열었나

청사 내부로 들어간 송씨는 비밀번호가 설정된 전자도어록까지 열고 채용관리과 사무실에 들어갔다. 당시 사무실은 잠겨 있었고 직원도 없었다. 송씨가 여러 숫자를 눌러가며 비밀번호를 찾았을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희박하다.

경찰은 송씨가 이 모든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기까지 내부인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출입증 분실자 3명과 보안검색대 근무자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CCTV 녹화영상을 분석해 송씨와 마주친 사람도 조사한다.

인사혁신처 황 차장은 ‘내부 조력자가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담당 직원들이 보안수칙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위반하지 않았다. 절차는 이행됐다”고 했다. 정부는 청사 방호와 보안 전반에 대해 감찰에 착수했다.

강창욱 조성은 박은애 기자

라동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