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그림 없는 책] 삐뚤빼뚤, 알록달록 글자만의 세상… 아빠가 읽어주니 재미 백배

입력 2016-04-07 19:16
그림 없는 그림책이다. 흰 바탕에 글씨만 있을 뿐이다. 글씨가 좀 크다는 것 뿐 그림 없는 그림책이기는 마찬가지다. 따분하고 딱딱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책.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책은 개성있고 웃긴 원숭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머리가 블루베리 피자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고, 게다가 로봇 원숭이라고 우기며 아침마다 개미를 냠냠 먹는다는 노래를 부르는 원숭이다.

“책에 나오는 말을/ 몽땅 다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는 거야.//뭐라고 적혀 있든지 말이야. //이것은 약속이야/ 책의 규칙이라고.”

바로 이 규칙 때문에 책 읽어주는 어른이 아연 우스꽝스러워지는 반전이 일어난다. 소리 내 책 읽어주는 아빠가 ‘나는 혼자 책을 읽을 줄 아는 원숭이야’라고 하더니 ‘뿌엑’ ‘뚜에엑’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는 대목에서 폭소가 터지지 않을 아이가 있을까. ‘꿀룩꿀룩꿀룩 꺼-으으윽 꺼-윽’ 같은 이상을 소리를 내는 대목에선 재미있다며 떼굴떼굴 구를 것 같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 글자 자체를 시각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크고 작고 기울기도 하는 등 글씨의 크기와 모양이 변화무쌍하다. 색깔도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하다. 때로는 글자가 마치 기차처럼 칙칙폭폭 흘러가는 것 같다. 글자 자체가 하나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경쾌하고 리드미컬하다.

어른이 읽어주지 않고, 아이 스스로 읽어도 재미있을 책이다. 저자인 미국의 코미디언 B. J. 노박의 창의적 발상이 돋보인다. 글자는 읽어야 하는 지루한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한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심어주는 책이다. 김영진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