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를 면치 못하던 에덴복지원 사업장이지만 규모는 커져 일부는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생활했다. 이 가운데 자주 와 격려해 주시던 한경직 목사님도 매형처럼 에덴복지원을 법인으로 만들어 보라고 권유하셨다.
“정 원장, 이 시설이 정 원장 개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법인으로 운영하세요. 내가 도움이 되도록 힘써 보겠소.”
법인서류를 준비하는데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서류를 만들자 한경직 목사님은 나를 대뜸 복지부장관실로 데려가셨다.
“에덴복지원은 중증장애인이 모인 곳입니다. 부모조차 포기한 장애인들을 정 원장이 데려다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느라 엄청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라가 정 원장을 좀 도와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 만에 법인등록증을 받았다. 임의시설이던 에덴하우스가 이듬해부터 정부 지원을 일부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직원 일부의 인건비를 지원해 주었는데 늘 적자였던 우리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에덴하우스는 법인이 되면서 이사회를 구성해야 했고 내가 이사장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가 안정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시설이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선물을 또 하나 주셨다. 그것은 1994년부터 쓰레기를 비닐봉투에 담아 버리는 ‘쓰레기종량제’가 전면 실시돼 우리도 납품업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린 웬만해선 찢어지지 않고 신축성 강한 쓰레기봉투를 최선을 다해 만들어 서울 각 구청에 보냈고 품질이 좋다는 인정을 받은 뒤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시설도 확충했다. 나로선 더 많은 장애우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었다.
한때 물량을 다른 곳에 뺏겨 전전긍긍하기도 했지만 조달청에서도 장애인들이 일하는 우리의 특수사정을 이해하고 합법적인 수의계약을 맺어줘 참 감사했다. 정부의 일은 하는 대로 정확히 입금이 된다. 난 수익이 나는 대로 직원들에게 월급 외에도 배당을 해 주었고 모두들 입이 크게 벌어졌다. 우리에게 이런 날도 오느냐며 신나 했다.
일은 많은데 우리 시설은 열악했다. 시끄럽다는 주변 주민들의 항의도 많았다. 기숙사도 비좁았다. 난 또 한번 큰 꿈을 그리기로 했다. 기숙사와 공장이 가까이 있고 24시간 따뜻한 물이 나오고 문턱이 없이 드나드는 대형 식당과 목욕탕이 있는 건물을 머릿속에 그렸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공장 이전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드디어 파주에 6612㎡(2000여평)의 땅을 매입하도록 도우셨다. 공사를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주민들이 반대를 시작했다. 공사현장을 경운기로 막고 멍석을 편 채 누워버려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시설이나 공장이 들어오면 왜 무조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를 하는지 내가 몸이 정상이었다면 그 주민들을 업어치기로 손을 봐주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러나 조용히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주민 대표들을 우리 공장으로 초청해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파주에 공장을 짓는 것입니다. 여기가 비좁아 더 크게 지어 나가려는 것입니다. 주민들이 우려하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일을 없을 것입니다.”
예상보다 공장규모가 크고 열심히 일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본 주민들은 감동을 받았는지 공장 건립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정덕환 <12> 한경직 목사님 도움으로 에덴하우스 법인화
입력 2016-04-07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