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전통… 격이 다른 ‘꿈의 무대’

입력 2016-04-07 04:01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의 악명 높은 '아멘 코너' 가운데 하나인 12번 홀 그린에 다다르는 호건 브리지(앞쪽)와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넬슨 브리지 전경.
조던 스피스가 지난해 열린 마스터스에서 시원하게 티샷을 날리고 모습.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가려지는 마지막 18번홀에서 관중들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마스터스 홈페이지
미국 남부 조지아주 북쪽 오거스타시의 4월 아침은 맑은 햇빛과 신기루와도 같은 안개로 시작된다. 섭씨 25도 내외의 날씨에 이미 잔디는 다 자라고 활엽수와 침엽수도 푸른 잎을 드리운다.

오거스타 내셔널 GC, 82년 전부터 매년 4월 둘째 주 목요일이면 조용한 시골도시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미국 PGA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1933년 이 곳은 팔려나갈 나무를 기르는 묘목장이었다. 그때 이 묘목장을 로버트 타이어 존스 주니어란 변호사가 전부 사들였다. 갓 서른을 넘긴 이 변호사는 일명 ‘보비’ 존스로 불린 최고의 골프선수였다. 미국과 영국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석권하고 브리티시오픈 US오픈 등 프로경기에서도 무려 13승을 올렸지만, 그는 단 한 푼도 상금을 받지 않았다.

‘영원한 아마추어’로 남은 보비 존스는 브리티시오픈 만큼이나 권위 있는 골프대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년 시절의 꿈을 이 묘목장에서 실현시켰다.

그리고 제1회 마스터스가 1934년 열렸다. 이후 골프의 명장면들은 이곳에서 연출됐다. 가깝게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4번 우승부터 멀게는 1940∼50년대 벤 호건, 샘 스니드, 바이런 넬슨의 ‘3인 시대’까지 세상을 놀라게 한 퍼팅과 아이언샷이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일어났다. 1960년대의 아놀드 파머, 1970년대의 잭 니클라우스, 1980년대 후반의 닉 팔도 등 위대한 골퍼들의 드라마도 여기서 쓰여졌다.

아직도 ‘사상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벤 호건은 1953년 -14라는 스코어로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을 차지했다. 3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가 거의 불구가 될 뻔했던 몸으로 기적을 연출했다. 그의 이름은 오거스타 12번홀 ‘호건 브리지’로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른다.

클러치 퍼트를 성공시킨 뒤 허공에 휘두르던 타이거 우즈의 어퍼컷 세리머니와 붉은 티셔츠의 전통 역시 이곳에서 시작됐다.

마스터스는 세계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같은 장소에서만 열리는 대회다. 브리티시 오픈과 US오픈, PGA챔피언십이 매년마다 대회 주관자에 의해 코스를 옮겨 다니며 열리는 데 비해 이 대회는 오로지 오거스타 골프클럽에서만 열린다.

골프장 곳곳에는 골프 자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호건 브리지, 1937년 챔피언 바이런 넬슨을 기념한 ‘넬슨 브리지’, 마지막 18번 홀에서 클럽하우스까지 이어져 있는 ‘매그놀리아 레인’….

마스터스는 페어플레이의 상징이기도 하다. 창립자 보비 존스는 선수시절 한 대회에서 스스로 벌타를 부과하는 바람에 2위를 차지했다. 그린 옆 러프에서 어프로치 연습을 하려다 골프공 바로 옆 잔디가 골프공을 건드렸다는 이유였다. 심판과 동료선수마저 “그건 벌타감이 아니다”고 했지만, 존스는 “바로 내가 봤다”며 벌타를 부과했다. 지고도 그는 “하나님과 내 자신에게 나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마스터스에서 당대의 최고 타이거 우즈는 ‘영원한 놀림감’이 될 만한 플레이를 했다. 2013년 2라운드 15번홀 두 번째 샷이 그린에 미치지 못하고 물에 빠졌는데 정당한 지점에 볼을 드롭하지 않고 계속 경기를 했다. 그렇게 작성한 스코어를 경기위원회에 제출하고도 실격당하지 않았다.

올해 마스터스는 4월 7일(현지시간) 열린다. 눈부신 햇빛과 온통 녹색의 물결, 그런 풍경위에 또 누가 기적을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신창호 스포츠레저팀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