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죽음에 무감각한 국가라면 문제가 생기면 좀 어떻습니까. 당신의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군인은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이 수의가 된다.” KBS 수목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송중기 분) 대위가 한 말이다. 잘생기고 책임감 강한 군인이 한 말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가상 국가 우루크의 재난현장에서 특전사 요원들이 펼치는 ‘태양의 후예’ 열풍이 뜨겁다. 군은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군은 지탄 대상이었다. ‘군피아’들의 방위사업 비리와 전방 소초(GP) 총기사고, 병영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윤모 일병 사건 등은 군의 신뢰를 격추시켰다. 군복 입기를 꺼리는 군인도 있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군인은 “태후 덕분에 군복 입고 활보하는 게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특전사 지원율도 높아졌다. 군에서 어색한 어법이라며 사용 자제를 지시했던 ‘∼말입니다’는 카카오톡과 문자, 일상대화에서 윤활유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등장하는 군인들은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 긴급 사안이 발생했다고 대위 한 명의 군 복귀를 위해 헬리콥터를 급파하지는 않는다. 상관 명령에 대드는 것은 징계감이다. 한 예비역 장군의 자녀는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채널을 돌린다고 한다. 이해가 된다. 부모를 통해 군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이 적지 않으리라.
유시진 대위 같은 군인이 나오려면 군 교육이나 인사체계가 혁명적으로 변해야 한다. 지금처럼 획일화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교육체계와 진급 때면 특정인맥 전횡, 지역·출신 안배 소문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같은 매력적인 군인이 살아남을 수 없다. 전략과 기개, 소신이 있는 인물보다는 주변 관리를 잘하는 행정형 군인이 승승장구하는 현실에서는 유시진 대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태양의 후예’가 그려내는 해외파병의 모습은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 한국군의 해외파병 활동은 성실성과 뛰어난 기술력, 진심 어린 대응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필자는 소말리아에 파병된 우리군의 첫 해외파병부대인 ‘상록수부대’ 취재를 위해 1993년 발라드를 방문했었다. 소말리아는 오랜 식민지 경험과 내전 탓인지 아이들마저도 무척 거칠었다. 한데 이 아이들도 유독 한국군에는 호감을 보였다. 발라드 주민들은 “한국군은 다르다”고 칭송했다. 음식이나 학용품을 전해줄 때도 낮은 자세로 꼭 눈을 맞춘다고 했다.
상록수부대뿐 아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정전감시 임무수행 중인 동명부대는 유엔레바논평화지원단(UNIFIL) 소속 12개국 군 가운데 ‘최고 군대’로 불린다. 아이티 지진 때 파견됐던 단비부대는 ‘신이 내린 부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말 현재 한국군은 13개국에서 1029명이 평화유지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파병은 한국군 이미지 개선과 군사외교, 실전경험 등을 쌓을 기회이다.
하지만 해외파병부대 임무가 안전한 공병 및 대민작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위험한 임무도 담당해야 한다. 동명부대가 ‘최고의 군대’로 칭송받지만 국경지대에서 위험한 지뢰제거 업무를 하는 중국군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을 군과 정책결정자들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태양의 후예’는 아시아·중동·유럽 등에서 다시 한류 열풍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군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이 열풍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내일을 열며-최현수] ‘태양의 후예’를 국방한류로
입력 2016-04-06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