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은 예배시간에 한편의 시(詩)를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 바람 들어오는 창문을 열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큰 기적이다’(서정홍 시인의 ‘하루’ 중 일부).
시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가슴이 따뜻하다고 한다. 예배가 끝나고 교인 3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교회가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논했다. 마을엔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김영자 집사는 “시내에 오가려면 꽤 오래 걸어야하는데 어르신들이 쉴 수 있도록 길목에 벤치를 놓자”고 제안했다.
하늘이 맑아지고 무엇을 해도 좋다는 청명(淸明)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충북 청주 낭성면 쌍샘자연교회(백영기 목사)의 모습이다.
◇사람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쌍샘자연교회 예배당 옆에는 사랑방 카페가 있다. 교인들이 황토와 나무로 직접 건물을 지었다. 카페 입구엔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곳에선 커피 녹차 생강차 국화차 코스모스차 등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이 카페엔 직원이 없다. 손님이 직접 찻잔을 고르고 물을 끓이고 차를 타 마시면 된다. 찻값은 원하는 만큼 내면 된다. 혹시라도 수익이 생기면 그 돈은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는 데 쓴다. 어떤 손님들은 잎이나 티백, 화분 등을 가져와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두고 가기도 한다. 주인 없는 무인 카페지만 어떻게 보면 모두가 주인인 셈이다.
카페 건물 2층엔 갤러리가 있다. 이름이 ‘마을’인데 교인들이 공모해서 지었다. 마을에서 더불어 살려면 이웃과 소통해야 하듯,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의 소통을 꿈꾼다는 의미다. 2013년 10월에 개관했는데 벌써 전시회를 10번 가까이 했다. 무명의 청년 작가들도 이용할 수 있고, 마을 어르신이나 어린이들의 작품을 걸기도 한다.
교회는 노아공방도 운영한다. 주민들은 공방에 와서 밥상 액자 화분 향초 등 필요한 물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백영기 목사가 말했다.
“노아공방은 창조주가 누구에게나 주신 재능과 솜씨를 꺼내 나누는 곳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목공 서각 도예 염색 바느질 등 잘하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카페든 갤러리든 공방이든 이런 것들을 통해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꽃잠’은 교회가 2012년 만든 출판사다. 작가의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글이 좋으면 책으로 엮는다. 지난해 1월엔 조희선 작가의 시집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를 출판했다. 책값은 독자가 책을 읽은 뒤 내고 싶은 만큼 지불하면 된다. 카페든 출판사든 벌이를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닌 건 분명했다. ‘꽃잠’은 신랑신부의 첫날밤을 의미하는 순 우리말이다. 이곳 교인들에게 있어서 글은 첫날밤처럼 순수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쌍샘자연교회는 매달 사랑방인문학당을 연다. 교인들이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다. 5일엔 ‘왜 정치는 우리를 배신하는가?’라는 책에 대해 나눴다. 4·13 총선을 앞두고 있어 이 책을 선정했지만 평소엔 동화책을 읽기도 한다.
“인문학은 우리의 마음을 일구어내는 괭이질과 같아요. 이세돌과 격돌했던 알파고를 보면서 우리가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런 문화적이고 인문학적인 것들이 우리 교회의 정신을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글과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드물다. 백 목사는 1992년 청주의 달동네에서 쌍샘교회를 개척해 사역을 시작했다. 재개발로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2002년 10월 교회를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시골에 들어와 보니 자연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성경을 펼치면 맨 앞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신 내용이 있습니다. 자연 안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전부 담겨있어요. 이런 자연을 우린 너무 홀대했어요.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신앙으로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에도 ‘자연’이란 단어를 넣었다.
쌍샘자연교회는 1년에 8∼9번 자연학교를 연다. 15명 정도의 아이들에게 1박2일 동안 자연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흙속엔 어떤 성분이 있는지, 나무가 왜 소중한지, 물은 어떻게 정화되는지 등을 설명한다. 숲, 계절, 건강, 농사 등이 모두 교육 내용이다. 친환경 유기농 제품 가게인 ‘착한 살림’을 만들어 지역에서 생산되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나누고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생태자연도서관을 세워 누구나 생명, 자연, 생태 관련 서적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교회 곳곳에, 주보에 주옥같은 글…'영성의 샘'
쌍샘자연교회에는 ‘문장(文章)’이 많다. 액자에 담긴 문장들이 교회와 사랑방 카페 곳곳에 걸려 있었고, 8쪽짜리 주보도 문장으로 빼곡했다. 글은 자아의 노출이라고 한다. 쌍샘자연교회에서 본 문장들엔 따뜻한 감성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한다.
-모든 계절이 그러하지만 특히 봄은 정말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자연은 봄바람 꽃바람으로 우리를 불러냅니다. 쌍샘자연교회의 나들이에 기대를 걸고 새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지난 3일자 주보)
-다음 주일에는 우리교회의 어르신들이죠, 두만강 여전도회와 속리산 남선교회가 연합해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이미 충분한 수고와 헌신을 하신 분들입니다. 무슨 다른 것을 더 하시라는 뜻보다는 살아계시고 함께 계신 것, 그러니까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힘이 되고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오래오래 저희들과 함께해 주십시오.(지난 3일자 주보)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사랑방 카페 입구에 적힌 글)
-밤하늘에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지구에서 누군가 착한 눈빛을 하고 자기를 바라볼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교회 복도에 걸린 액자에 담긴 최종진의 시 ‘신앙’)
-빛과 소금이 별거겠습니까, 필요한 부분 청소하고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거겠지요. 우리들과 교회로 인하여 서로와 마을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좋겠습니다.(지난달 13일자 주보)
-암울하다 못해 절망적인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굳게 믿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망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지난 2월 28일자 주보에서 3·1절을 소개하는 대목)
청주=글·사진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한국의 생명교회-충북 청주 쌍샘자연교회] 자연으로 돌아가 생명을 품다
입력 2016-04-06 19:30 수정 2016-04-06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