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서라벌로의 시간 여행, 경북 경주

입력 2016-04-06 18:59 수정 2016-04-06 22:31
경북 경주 인왕동 벌판에서 1500년 세월을 버틴 첨성대가 화려한 조명에 하얀 목련꽃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첨성대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진달래꽃과 호수에 비친 반영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위 사진). 이른 아침 빛 내림이 황홀한 삼릉 소나무숲(아래사진)
은은한 조명에 황홀한 모습을 보이는 대릉원 목련(위 사진). 벚꽃길 명소로 알려진 보문호.
‘천년고도’ 경주는 언제 가도 볼 것이 많다. 삼국시대 신라의 도읍지였던 만큼 역사와 문화를 품은 보배로운 유적·유물이 무궁무진하다. 경주의 멋은 야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 4월이면 각양각색의 맵시를 뽐내는 꽃이 어우러진다. 다채로운 경관 조명으로 치장한 유적과 교태를 부리는 봄꽃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황홀경을 펼친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밤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찾을 곳이 ‘동궁과 월지’다. 지난 1일부터 10월말까지 개장시간을 30분 연장했지만 오후 10시30분이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입장해야 한다.

경주의 밤이 유명해진 것은 이 곳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한 조명을 받은 모습이 환상적이다. 봄 여름 가을 어김없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많은 연유다.

과거엔 안압지(雁鴨池)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폐허로 남아 있던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자 사람들이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드는 연못이란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도 교통 표지판이나 안내도에 ‘동궁과 월지’ 아래 (구 안압지) 표기가 딸려 있다.

1975년 준설 발굴조사 이후 달라졌다. 연못의 형태가 확인되고 궁궐의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도 출토됐다. 1980년대에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면서 신라 문무왕(674년) 때 태자가 거처하던 동궁과 월지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고 이 곳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군신들의 연회나 사신 접견 잔치도 열렸다. 후백제 견훤의 기세가 등등하던 당시 위기를 느낀 경순왕이 왕건을 불러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많이 훼손된 뒤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가 복원됐다. ‘달이 비치는 연못’ 이라는 뜻인 ‘월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 총 둘레 1000m의 크기로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크지 않은 연못인데도 넓고 아름다워 보인다.

동궁과 월지를 봤으면 첨성대로 향한다. 무료로 볼 수 있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이 632년에서 647년 재위 시 축조한 것으로 삼국유사에 전한다. 높이 9.5m로 2∼4m 정도로 인왕동 벌판에 우뚝 서 1500년 세월을 묵묵히 버티고 있는 국보 31호다.

첨성대 일원이 사적지로 지정 관리되면서 꽃단지가 됐다. 봄이면 벚꽃·목련과 유채가 만발하고 여름에는 황하코스모스와 연꽃의 향연이 이어진다, 가을엔 꽃무릇이 반짝 유혹한다. 목련은 이미 절정을 지났고 벚꽃은 꽃비를 흩날린다. 유채꽃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첨성대에서 길을 건너면 대릉원이다. 천년 동안 경주를 지켜온 천마총, 황남대총, 미추왕릉 등이 모여 있는 고분군이다. 9시 이후에 찾으면 좋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데다 한적하다. 대신 천마총은 문을 닫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

대릉원으로 들어서면 고분과 목련화가 반긴다. 고분 주변 이곳저곳에 목련이 있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따로 있다. 거대한 두 개의 능이 유려한 곡선으로 만나는 자리에 심어진 아름드리 목련 한 그루다. 이 목련을 담기 위해 봄날을 기다려온 사진가들이 경주로 몰려든다. 은은한 조명이 목련을 비추고 푸른 어둠이 배경으로 깔리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경주에 위치한 경북도 산림환경연구원에는 목련 터널이 볼 만하다. 연구원 주차장 바로 옆 길에 늘어선 산목련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와 작은 개울 옆에서 색다른 풍광을 펼쳐낸다. 꽃터널 속을 가족이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화려한 빛을 발하는 꽃은 아니지만 발길을 이끄는 곳이 있다. 경주 남산 자락의 삼릉 소나무 숲이다. 이 소나무 숲은 한 사진작가에 의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웅장한 몸통에 철갑처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채 제 몸을 비비 꼬며 유혹한다. 소나무 사진은 안개와 빛 내림, 날씨 등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오는 9일 경주 시내와 보문단지 일대에서 ‘제25회 경주벚꽃마라톤·걷기대회’가 열린다. 한국관광공사가 경주시, 일본요미우리 신문 서부본사와 함께 한·일 마라톤 동호인들의 친목을 다지고, 경주의 문화유적을 일본 관광객에게 알리고자 개최하는 행사다. 지난해 12월부터 실시한 관광공사의 홍보마케팅으로 타이베이·홍콩 등 중화권 850명을 포함해 1만2000명가량이 참석해 꽃비를 맞으며 역사와 문화의 길을 달린다.

여행메모

KTX 이용한 뒤 렌터카로 이동하면 편리

보문단지에 묵고… 쌈밥· 두부요리 별미


수도권에서 경주까지는 KTX 열차편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2시간 15분 남짓 소요된다. 신경주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이동하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빠지면 된다.

경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은 경주 시내에서 선덕여왕릉 방면으로 10분가량 달리면 도착한다. 대중교통은 경주버스터미널에서 10번과 11번 버스를 타면 된다.

경주 시내와 보문관광단지에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보문관광단지에 숙소를 잡으면 교통체증 염려 없이 늦도록 밤 벚꽃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유명 벚꽃 축제 보다 1주일가량 개화가 늦어 시기를 놓친 관광객들이 찾으면 좋다. 대명리조트 경주는 객실에서 보문호의 경관과 호반을 따라 이어진 벚꽃을 볼 수 있다. 6.7㎞에 달하는 보문호 주변 순환 둘레길이 명소다.

경주의 먹을거리는 다양한 반찬과 채소쌈이 한 상에 오르는 쌈밥이다. 대릉원 인근에 비슷한 솜씨와 차림으로 쌈밥을 내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보문단지 두부요릿집도 추천할 만하다.

경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