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통장이라는 별칭으로 출범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가입자 수가 출범 3주 만에 122만명을 넘어섰다. 가입액은 7000억원에 육박한다. 수치상으로는 준수한 성적이다. 하지만 계좌 중 상당수가 금융권의 실적 경쟁으로 만들어진 ‘깡통계좌’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ISA 가입자 91% 이상이 은행에 계좌를 만들었다. 증권사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은행에 맡긴 돈은 1인당 평균 36만원밖에 안 된다. 은행 계좌 대부분이 허수라는 얘기다.
깡통계좌 논란의 본질은 결국 대다수 금융 소비자들에게 ISA 상품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 ISA는 일본 등 외국과는 달리 주부나 청년 구직자는 아예 계좌를 만들 수 없다. 3년의 의무가입기간도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스럽다. 중도 인출할 경우 세제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단점이다.
◇“가입기간 무제한 늘려야”=ISA 관련 연구용역에 참여했던 손영철 세무사는 5일 “부자감세 논란 눈치를 보는 정치권 때문에 ISA가 사실상 누더기가 됐다”며 “진짜 부자들은 현금을 금고에 넣거나 땅에다 파묻는데, ISA 같은 투명한 금융절세 상품에 제한을 두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ISA가 자산관리의 실질적인 ‘지팡이’가 되려면 크게 세 가지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가입대상을 근로소득·사업소득자로 제한한 부분이 문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대익 연구위원은 “노후 준비가 절실한 고령화시대 은퇴자들이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해외처럼 일정 연령 이상 모든 국민이 재산불리기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세무사는 “은퇴 자산가들이 ISA에 가입할 수 있다면 부동산에 묶인 자금이나 지하자금이 양지로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입기간과 중도 인출을 제한한 것도 ISA 활성화의 걸림돌로 꼽혔다. 현행 ISA 세제혜택은 5년 만기가 되는 시점에 종료된다. 5년차에 넣은 돈은 혜택을 1년밖에 못 받는다. 재형저축 등에서 최대 10년까지 혜택을 주는 것과 비교하면 짧은 기간이다. 돈을 일부 인출하면 혜택이 전부 사라지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손 세무사는 “ISA에 자금을 묶어둘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에 오히려 노후자금으로 활용되기 어렵다”며 “영국처럼 ISA 가입기간을 영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 서보익 연구원은 “의무가입기간 등의 제약이 개선되지 않으면 ISA 시장규모는 잠재시장의 4분의 1 이하로 축소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운용대상 자산, 운용형식 개선이 꼽혔다. 신탁형을 예금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탁형은 투자에 본인의 판단이 필요한 상품이다. 김 연구원은 “영국은 ISA 구성 중 예금이 99% 이상”이라며 “수수료가 발생하는 신탁형을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스피200 선물·옵션 등 양도소득세가 과세되는 상품을 ISA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손 세무사는 “장기적으로는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관리계좌도 ISA 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세수 결손 고려해야”=정치권에서도 20대 총선을 앞두고 ISA 개선과 관련한 공약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ISA 가입대상 확대, 인출제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총선 경제정책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 재산증식이라는 목적에 맞게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큰 틀에서 갑자기 개선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입 대상을 확대할 경우 자산가가 배우자 계좌에 돈을 불입하는 등 부자 감세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무가입기간을 없애는 것도 목돈 마련이라는 ISA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수 결손도 고려 대상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ISA 말고 다른 비과세 금융상품이 전혀 없는 해외와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절세 상품이 통합된다면 대상 확대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면서도 “적어도 1∼2년은 운용해보고 신중히 결정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ISA 활성화를 위해 우선 은행에 대해 신탁형으로 한정된 ISA 운용을 일임형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KB국민·신한·우리·IBK기업은행은 오는 11일 일임형 ISA 상품을 출시한다. 5년이 끝나면 일시금으로 인출해야 하는 인출방식을 최대 5년간 월 지급 방식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나성원 백상진 기자 naa@kmib.co.kr
[Wide&deep] “매력 없는 ISA, 3大 제한 풀어 들고싶게 만들어라”
입력 2016-04-06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