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국고보조금] 100억 넘는 사업 적격성 심사… “부정수급 차단 역부족”

입력 2016-04-06 04:00 수정 2016-04-06 17:17



#1. 한 민간 연구소는 정부 연구용역 과제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원의 이름을 올리고 인건비를 청구했다. 용역을 준 부처는 이 연구소에 수천만원을 지급했다.

#2. 한 영화 제작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영화 제작 보조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자비 2억원을 지출했다는 정산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제작사는 2억원을 부담할 능력이 없었고 정산 서류도 가짜였다. 지자체는 보조금 4억원을 줬다.

국고보조금이 ‘눈먼 돈’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빼돌리는 방법’은 다양한데 이를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1월 국회에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다시 한번 국고보조금 누수를 막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법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뜯어고쳤다”고 자신했다.

위의 두 사례도 개정된 법률에 따른 대응체계로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인력 조작은 통합관리지침에 따라 걸러지고 보조금 수급 자격은 보조금법 개정을 통해 검증이 강화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완전범죄가 없듯 완벽한 제도와 법도 없다고 말한다.

◇신고센터 열자 신고건수 급증=정부는 2013년 8월 복지사업 부정수급 척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두 달 뒤 ‘정부합동 복지부정신고센터’를 출범시켰다. 이후 지난해 1월 복지·보조금부정신고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센터 출범 이후 총 1813건이 접수됐다. 그중 처리 완료된 것은 1731건(95.5%)으로 447건은 조사·감독 기관에 이첩됐다. 신고건수는 센터 출범 전에 비해 월평균 약 18배 증가했다. 그중 보조금 부정신고는 월 평균 4건에서 11.1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실제 보조금 부정수급 건수와 액수는 파악하지 못했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가 끝난 것만 부정수급으로 보기 때문에 권익위에 접수된 신고를 모두 부정수급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보도된 1914억원이 정부가 확인해줄 수 있는 액수”라고 했다.

◇온·오프라인, 쌍끌이로 막는다=그간 정부는 국고보조금을 선정과 집행, 사후관리, 부정수급 관리 등 4단계로 점검·관리해 왔다. 그러나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해 시행령에 이어 올 초 개정된 법률을 근거로 운영 방식을 좀 더 세밀하게 만들었다.

일단 100억원 이상의 신규 사업은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선정될 수 있다. 100억원 이상이거나 부정수급이 우려되는 사업은 매년 한 번씩 집행 상황을 점검받아야 한다.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계산서를 사용해야 한다. 사업이 끝나도 관리는 계속된다. 10억원 이상 사업은 회계감사 대상이다. 한 차례 부정수급이 적발돼도 사실상 아웃된다. 사업자는 5배 이내의 제재부가금과 가산금을 내야 하고 명단도 공개돼 향후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이 같은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국고보조금 통합관리 시스템’이다. 총 352억원을 투입한 이 시스템은 내년 7월 개통된다.

윤병태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추진단장은 “정부부처와 지자체 등 560여개 기관의 정보를 연계하기 때문에 중복 편성되는 보조금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구멍은 있다=그러나 여전히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한 조세재정 담당 교수는 “예전에도 정부는 보조금을 막겠다며 그물을 쳤다”면서 “이번 대책들은 그물망이 좀 더 촘촘해진 것뿐”이라고 했다.

우선 세금계산서 위조를 막기 위해 전자계산서를 활용하겠다고는 했지만 비용 자체를 과다 계상해 청구할 수 있다. 기재부 측은 “수급자가 청구한 내역 중 과도하게 비용이 발생했다고 의심되면 통합시스템은 담당 공무원에게 ‘경고’를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고’만 있을 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까지는 마련하지 못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이버 테러 등의 부담도 크다. 통합시스템에는 수급자의 정보가 그대로 올라간다. 사업자의 경우 수출 실적과 국세체납 여부, 휴폐업 여부 등을 알리는 검증 정보가 등록된다. 국세청, 은행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이 해당 정보를 제공한다. 개인일 경우 가구원 소득, 건강보험료, 4대 사회보험 가입 여부 등 민감한 정보까지 모두 올라간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