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이 아픔, 너에게 물려줄 수는 없어”

입력 2016-04-05 18:59 수정 2016-04-05 21:05
“엄마처럼 살지 말고 별처럼 살아라.” 미혼모 별이 엄마가 기독교 운영 미혼모자 시설 ‘애란원’에서 아이를 안아 올리고 있다. 엄마는 “햇볕 잘 드는 방에서 아이와 함께 있어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미혼모 아기를 안고 있는 애란원 강영실 대표원장. “미혼모는 아기를 낳을 권리와 키울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우울증을 앓았어요. 힘든 나날이 계속 됐어요.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창가에 서 있던 엄마가, 엄마가… 제가 보는 앞에서 8층 아래로… 아빠도 없는데 엄마마저 떠났어요”

“갈 데가 없어서 친구 집에서 지내다 거리를 떠돌았어요. 너무 배고파서 물건 훔치다 붙잡혔어요.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소년원에서 1년 3개월 살았어요. 그만 나갈 때가 됐는데, 그냥 내보면 또 사고 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했어요. 친구 아빠가 보호자가 되어 인계해주시면서 양딸로 삼아주셨어요. 양부모님이 밥도 주고 용돈도 주시고 검정고시 학원에도 보내주셨어요. 참 고마운 분이셨어요. 그러다가 또 다시 혼자가 됐어요. 겁이 났어요. 사고 쳐서 또 소년원 갈까봐. 혼자서 어떻게 살지…. 버림받고 떠도는 인생이 괴로워서 죽으려고 또, 죽으려고 했어요, 울 엄마처럼….”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임신했어요. 무거운 몸으로 떠돌다 이곳에 왔어요. 별이를 낳고 나서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요. 엄마는 왜 나를 버리고 갔어야만 했는지, 혼자서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산후 우울증이 와서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아프니까 아기도 힘든지 같이 아팠어요. 엄마 입장을 생각했어요. 아빠 보내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입장이 되어 보니까 엄마를 원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를 이해할 것 같아요. 엄마를 언젠가 만나면 안아주고 싶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엄마가 좋아지니까 아기도 좋아졌어요. 아기 이름을 별이라고 지었어요. 엄마처럼 살지 말고 별처럼 살라고…. 별이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에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엄마를 보고 웃어주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뒤집고, 굴러다니고, 옹알이 하는 별이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햇볕 잘 드는 방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게 꿈만 같아요. 난생 처음 맛보는 행복이에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어요.”

미혼모 ‘별이 엄마 웃게 하기’ 프로젝트

봄볕 따사롭던 3월 초순, 미혼모자 생활시설 ‘애란원’에서 별이 엄마(24)를 만났습니다. 별이는 4개월 된 여자 아기입니다. 별이 엄마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듣다가 목이 메고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별이 엄마는 손으로 입을 자꾸 가렸습니다. 굳은 표정을 잘 풀지 않았습니다. 삶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앞니가 없는 등 치아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잃은 뒤 홀로 살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별이 엄마를 이대로 두면 삶이 피폐해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엄마 없이 살아온 소녀, 엄마가 되다

누가 앞니 없는 엄마를 채용하겠습니까. 그 누가 입을 앙다문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면 별이 엄마뿐 아니라 별이의 눈빛도 빛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난생 처음 행복감을 느낀다는 별이 엄마에게 웃음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소년희망공장 건립을 추진 중인 최승주(59·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대표와 함께 치과를 찾아간 이유입니다.

별이 엄마 치아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앞니 6개와 어금니 4개가 없는데다 남은 이도 충치가 심해 발치해야 할 상황입니다. 치과 원장님께서는 “임플란트와 발치 등 대단한 공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별이 엄마의 딱한 사정을 들은 맘씨 좋은 원장님이 비용의 50%를 부담하겠다며 임시 틀니를 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머지 비용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는데 희소식이 왔습니다. 어게인을 후원하는 수녀님께서 서울성모병원을 통해 전액 무료로 임플란트 등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별이 엄마 치료는 7일(목) 첫 진료를 시작으로 대공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최 대표는 “별이 엄마가 맘껏 웃을 수 있도록 따뜻한 손발이 되어주신 수녀님과 서울성모병원에 감사드린다”면서 “엄마 없이 살아온 별이 엄마를 엄마의 마음으로 계속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어게인을 통해 모금된 별이 엄마 후원금은 애란원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최 대표는 또한 “아기와 엄마들이 행복해지는 소녀희망공장(카페)을 만들어 미혼모의 자립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국민일보 소년희망프로젝트 ‘소년이 희망이다’는 어게인과 함께 소녀희망공장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

혜은(23·가명)씨는 혼자입니다. 어릴 때 이혼한 엄마는 새아빠와 살고 있습니다. 새아빠와 사는 괴로움보다 외로움을 선택한 혜은씨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남자를 사귀었는데 덜컥 임신했습니다. 아기를 낳고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몸이 약한 탓도 있지만 아기를 떠나보낸 뒤에 자주 아팠습니다.

지난 2014년 9월 사내 아기를 낳았습니다. 1년 넘게 아기를 키우다 2015년 12월 입양 보냈습니다.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아기에게 만큼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입양 보냈습니다. 새아빠와 사는 아픔을 겪게 하지 않으려고 입양 보냈습니다. 눈물 적시던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기에게 해줄 게 너무 없기 때문에 좋은 가정의 양부모 품에서 잘 살게 해주고 싶어서 아이를 보냈어요. 아기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아기가 나중에 커서라도 엄마가 버린 게 아니었다고 생각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저도 힘을 내서 살려고 합니다.”

혜은씨는 피부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홀로 서야만 합니다. 실력을 갈고 닦아 피부미용실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아이를 만나면 최선을 다하며 산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기를 떠나보냈어도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그 엄마의 다짐입니다.

아기를 포기한 어미의 흐느낌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한국 교계가 운영하는 ‘애란원’ 강영실(57) 대표원장은 미혼모와 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기는 태어날 권리와 낳아준 부모 밑에서 자랄 권리가 있습니다. 미혼모는 잉태된 아기를 낳을 권리와 키울 권리가 있습니다. 모성보호와 생명존중, 가족보존의 가치는 지켜져야 하며 입양과 낙태는 숙려되어야 합니다.”

아기를 포기한 엄마는 나쁜 엄마일까요? 아니랍니다. 절대 아니랍니다.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혹한 현실에 부딪쳐 쓰러진 엄마들은 소리 죽여 흐느낀답니다.

자식 잃은 어미의 흐느낌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없으면 돌 던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강 원장이 이렇게 부탁합니다.

“낙태하고 입양한 엄마에게도 모성이 있습니다. 모성이 없어서 그 선택을 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미혼모의 모성과 아기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가 조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혼모의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입양 보내고 낙태 했다고 엄마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아기를 떠나보낸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어루만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사진 임종진(작가)

jongg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