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2억달러 채권 1달러에 매도… 돌고 돌아 친구 회사로

입력 2016-04-04 21:12 수정 2016-04-05 00:14

파나마에서 유출된 조세회피 자료에 따르면 각국 지도자와 유명인사들은 검은돈이나 세금회피용 돈을 조세도피처 금융기관에 맡기고, 이 금융기관이 다시 제2, 제3의 조세도피처로 돈을 돌리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했다. 과거와 달리 독재자뿐 아니라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도 명단에 포함돼 조세도피가 부자들 사이에 만연돼 있음을 시사했다.

4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따르면 검은돈 은닉 및 탈루에는 국제적인 돈세탁 네트워크가 총동원됐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간 경로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돈세탁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ICIJ는 지적했다.

푸틴의 검은돈은 2011년 2월 10일 하루에 여러 나라를 오가며 세탁됐다. 카리브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샌달우드 콘티넨탈이라는 회사는 2억 달러(2300억원)를 지중해 키프로스에 있는 호르위치 트레이딩에 빌려줬다. 샌달우드 콘티넨탈은 이 돈과 이자를 회수할 권리를 단돈 1달러에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오브 파이낸셜이라는 회사에 팔았다. 오브 파이낸셜은 다시 이 권리를 파나마 소재 인터내셔널 미디어 오버시즈라는 회사에 매도했다.

ICIJ 추적 결과 처음 돈을 빌려준 샌달우드 콘티넨탈은 푸틴의 측근이자 로시야은행 대표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였다. 마지막으로 이 돈에 대한 권리를 사들인 회사는 푸틴의 친구이자 첼리스트 거장인 세르게이 로드긴이 지배하는 회사였다. 2300억원이 이런 방식으로 푸틴 주변을 맴돌았다. 관련 거래액은 모두 20억 달러(약 2조3000억원)에 달한다.

푸틴 외에 현직 세계 정상으로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세탈루 의혹에 연루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매형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회사 2개를 설립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아버지인 증권중개인 이언 캐머런도 탈세를 위해 모색 폰세카를 이용했다. 의혹이 불거지자 아이슬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는 각각 총리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투표 및 탄핵 요구가 제기됐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소속 리오넬 메시를 비롯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레스터 시티 소속 레오나르도 우요아, 칠레 축구영웅 이반 사모라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 출신 가브리엘 에인세 등도 탈세를 위한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후안 페드로 다미아니 윤리위원의 돈세탁 혐의도 포착됐다. 영화배우 청룽(성룡)은 6개의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