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보다 150배 빠른 국산 슈퍼컴 만든다

입력 2016-04-04 21:12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관련 분야 개발에 1조원을 배정한 정부가 알파고보다 최대 150배 빠른 슈퍼컴퓨터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향후 10년간 최소 1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실패한 전례 탓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등을 포함한 지능정보사회 구현을 위해 슈퍼컴퓨터 자체 개발 사업에 착수한다고 4일 밝혔다. 슈퍼컴퓨터는 ‘국제 슈퍼컴퓨팅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데이터 처리 속도 기준 전 세계 500위 내 컴퓨터를 뜻한다. 세계 1위 성능을 자랑하는 중국의 슈퍼컴퓨터 ‘톈허2’는 초당 3경3860조번의 연산처리가 가능하다.

국내에도 기상청의 ‘누리’를 비롯해 10대의 슈퍼컴퓨터가 있지만 성능은 텐허2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마저도 모두 미국 제조업체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국내 초고성능 컴퓨터 시장 규모가 세계 시장의 2.5%에 불과해 기업이 개발에 나설 유인이 적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만의 슈퍼컴퓨터를 키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가 제시한 한국형 슈퍼컴퓨터 제작 방향은 크게 4가지다. 우선 2020년까지 1PF(페타플롭) 이상의 슈퍼컴퓨터를, 2021∼2025년에는 30PF 이상인 슈퍼컴퓨터를 단계적으로 개발키로 했다. 1PF은 초당 1000조번의 연산이 가능한 속도로, 알파고를 가동한 슈퍼컴퓨터(0.2∼0.3PF 추정)보다 3∼5배가량 빠른 수치다. 2025년 개발완료 목표인 30PF는 알파고와 비교하면 90∼150배가량 빠른 셈이다.

정부는 이달 중 공모를 내고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함께하는 초고성능 컴퓨팅 사업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안정적인 R&D(연구·개발)를 위해 올해부터 10년간 인력 양성 등에 매년 100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개발된 슈퍼컴퓨터는 기상과 재해 등 공공분야에 우선 보급할 방침이다.

야심찬 계획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과거에도 슈퍼컴퓨터 개발 시도가 몇 차례 실패한 전례가 있어서다. 1989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삼성전자 등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90년대 중반에도 167억원이 투자된 연구가 있었다. 서울대가 개발한 ‘천둥’,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마하’, 한국과학기술정보원의 ‘바람’ 등 3대의 컴퓨터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 세계 500위 내 순위에 들지 못해 슈퍼컴퓨터에서 밀려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통신학과 교수는 “예산만 늘린다고 갑자기 슈퍼컴퓨터가 생기는 게 아니다”며 “우수한 인재와 기업의 기술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