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사람 따로, 사과하는 사람 따로’였다. 건물 정문이 닫혀 있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한 MPK그룹 정우현(68·사진) 회장은 금세 사라졌다. 대신 직원들이 새벽까지 남아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원한 건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다.
4일 오전 6시30분 피해자 황모(59)씨는 목에 보호대를 감고 출근해 있었다. 며칠 전 소란에 심신이 지쳤다고 했다. 그래도 제시간에 일터인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의 한 빌딩으로 출근했다. 황씨는 “그 회사 지사장 등이 찾아와 ‘미안하다’ ‘죄송하다’ 연신 사과했지만, 나는 회장한테 직접 사과를 받고 싶다”며 입을 뗐다. 이어 “본인이 사과한 게 아니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고, 임원들이 사과한 것도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고 언론에서 취재하니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에 불과해 보였다”고 꼬집었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 보였다.
사건은 지난 2일 일어났다. 황씨가 경비 일을 하는 건물에는 MPK그룹이 운영하는 A식당이 들어와 있다. 이날 정 회장 등 5명은 A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황씨는 평소처럼 오후 10시15분쯤 건물의 정문 셔터를 내렸다. 정문이 닫힌 뒤 건물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후문을 이용한다고 했다. 문을 닫고 경비실로 돌아오자 A식당의 직원들이 달려왔다. “회장님이 안에 계신다”며 정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문을 열어주자 이번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회장님께 문이 닫힌 이유를) 얘기 좀 해주세요”라고 했다.
“제가 경비입니다. 죄송합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간 황씨는 정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주먹이 날아왔다. 왼쪽 얼굴을 맞았다. “이 ○○, 사람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문을 닫냐.” 주변 직원들이 말리자 정 회장은 황씨의 멱살을 잡았다고 한다. 이어 다시 주먹을 날렸다.
폭행이 일어난 뒤 누군가 황씨를 후문 계단 쪽으로 밀쳤다. 황씨는 동료 경비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정 회장은 정문으로 걸어 나간 뒤였다.
사과는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지사장이라는 사람은 잇달아 사과를 했다. 새벽 2시쯤에는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황씨는 경비실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다음날 오전 6시30분쯤 퇴근을 하려는데 본부장 등 2명이 건물 근처 편의점 앞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4시간 일하고 하루를 쉬는 황씨는 3일 병원 치료를 받고 집에 있었다. 걸려오는 전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MPK 측은 4일 “황씨에게 사과하고 싶어 찾아가려고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합의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반면 황씨는 합의 얘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사를 받기 위해 서대문경찰서를 찾은 그는 “사과도 안 하는데 무슨 합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이라고 함부로 인격을 모독한 데 화가 난다. 사과를 얼굴보고 해야지 전화로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경찰은 정 회장에게 9일까지 출석을 요구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경찰 수사는 중단된다. 합의하지 못하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미스터피자, 폭행은 회장님이… 사과는 직원들이
입력 2016-04-0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