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설악산 등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은 국립공원에서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 대표 침엽수들이 빠르게 집단 고사(枯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 세계에서 한라산, 지리산에만 집단 서식하는 ‘구상나무’는 한라산뿐 아니라 지리산에서도 죽어가고 있었다. 육지 침엽수 집단 고사 실태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상고온과 적설량 감소 탓이라 한반도 생태계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녹색연합은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한반도 침엽수 집단 고사 현황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1년간 국립공원 등 국내 산림생태계 핵심지역을 조사한 결과다.
지리산국립공원 구상나무는 2000년 이후 개체 고사가 시작돼 최근 2∼3년 사이 본격적으로 집단 고사하기 시작했다.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돼지령∼임걸령∼반야봉∼토끼봉∼연하봉 등 지리산 주능선 전반의 해발 1900∼1400m 높이에서 고사목 군락이 두드러졌다. 서부 지역 주능선에 회색이나 검은 빛깔을 보이는 고사목들이 즐비했다. 구상나무는 고사가 시작된 뒤 1년이 지나면 가지 끝이 완전히 사라지고 줄기와 굵은 가지가 해골처럼 하얀 ‘고사목’이 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지리산 반야봉 1600m 위쪽 구상나무 대부분이 고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상나무는 지구상에서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에서만 자라는 국내 자생수종이다. 한라산에서는 이미 5년 전 집단 고사가 본격화됐고 덕유산국립공원에서도 개체 고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것이 곧 세계적인 ‘멸종’을 뜻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도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다.
설악산국립공원에서는 주봉인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에서 분비나무 집단 고사가 확인됐다. 설악산은 남한에서 분비나무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녹색연합은 분비나무들이 2013년부터 고사해 소청대피소 주변 분비나무의 경우 ‘전멸’에 가까운 상태라고 분석했다. 서 전문위원은 “10년 안에 분비나무 주요 집단서식지가 상당 부분 사라지고 소규모 개체만 남는 생태적 고립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2012년 36.8%였던 지리산 구상나무 고사율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60.9%에 달했다. 설악산 분비나무 고사율도 2011년 2.6%에서 지난해 10.9%로 매년 늘었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인 경북 울진·삼척 일대에서도 2013년부터 금강소나무들의 고사가 확인돼 국립산림과학원이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침엽수는 육지 생물 중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종으로 사계절 내내 수분과 영양이 공급돼야 한다.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센터 관계자는 “겨울에서 초봄 사이 이상고온과 가뭄, 고산지대 한건풍(寒乾風)이 맞물려 스트레스가 고사를 재촉한다”며 “태풍 등 고산지대에서 바람이 강해진 점도 침엽수 뿌리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측은 “국립공원 고산침엽수 식생지도를 작성해 정밀한 실태 파악을 진행하고 강우량, 적설량, 풍향, 풍속 등 국지적 기상 데이터 확보를 위해 주요 능선 등에 산악기상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기후변화의 재앙’ 한반도 침엽수 말라 죽는다
입력 2016-04-04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