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정모(25)씨는 ‘서울 3대 성형외과’로 꼽히는 그랜드성형외과에서 안면 윤곽수술을 받았다. 원장 직함을 쓰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자신이 직접 집도하는 것처럼 수술 계획 등을 설명했다. 그러나 마취된 정씨를 수술한 건 제3의 치과의사였다.
유명 성형외과의 이른바 ‘유령 수술’ 의혹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유령 수술이란 상담 때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수술을 할 것처럼 속이고는 마취 이후 환자 몰래 비성형외과 의사가 대신 수술하는 것을 뜻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정순신)는 4일 사기 및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강남의 그랜드성형외과 원장 유모(44)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유씨는 2012년 11월∼2013년 10월 수술 중 의사 바꿔치기 수법으로 환자 33명을 수술해 1억52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환자들이 마취상태에 빠져 실제 수술 의사를 알 수 없는 점을 악용해 상담을 맡은 의사 대신 치과 의사나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대리 수술을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지난해 12월 그랜드성형외과의 유령 수술 피해자가 최대 20만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검찰은 증거와 진술이 확보된 33건에 대해서만 우선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돼 내부 관계자 협조 없이는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씨는 서울 강남과 서초, 부산 등 4곳에서 ‘월급 원장’들을 내세워 병원을 운영, ‘1인 1개소’ 원칙을 위반한 혐의도 있다. 환자 33명의 진료기록부를 폐기하고, 환자들에게 프로포폴, 미다졸람 등의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하고도 관리대장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이와 함께 그랜드성형외과의 유령 수술 논란을 촉발시킨 의사 조모(37)씨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2013년 12월 수술실의 산소공급장치 작동법조차 모른 채 여고생 A양(당시 18세)의 쌍꺼풀 등을 수술하던 중 응급상황에 미숙하게 대처해 사망하게 한 혐의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유령수술’ 그랜드성형외과원장 재판에
입력 2016-04-04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