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학교 반대” 日 우익·보수언론 ‘嫌韓’ 부추겨

입력 2016-04-04 21:23
일본 도쿄 중심가인 신주쿠에 위치한 옛 이치가야 상고 건물. 최근 도쿄도가 이 건물 부지를 한국인 학교 증설을 위해 한국 정부에 빌려주기로 하면서 우익과 현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산케이신문

일본 도쿄 중심가인 신주쿠에서 한국인 학교 증설 부지를 놓고 갈등이 일고 있다. 도쿄도는 한국인 학교에 도심 건물을 빌려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우익단체와 보수언론이 반대여론을 빌미로 혐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 일간 산케이신문 등은 도쿄도가 지난달 ‘도쿄 한국학교’ 증설을 위해 내놓은 6100㎡(약 1845평) 크기의 부지를 둘러싸고 항의가 빗발친다고 4일 전했다.

논란이 된 곳은 고등학교로 쓰이던 시내 중심가 건물이다. 인근에는 일본 왕궁을 비롯해 와세다 대학 등이 있다. 도쿄를 ‘열린 국제 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책과 더불어 도쿄 한국학교 학생 절반가량이 현재 신주쿠에 사는 게 부지로 선정한 이유다.

도쿄도가 지난달 16일 한국 정부에 유상 대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지에서는 도심에 위치한 이 건물을 현지 주민이 아닌 외지인에게 빌려준다는 반발이 잇따랐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도청에 걸려온 항의전화와 메일이 모두 5800건에 달한다. 도의회 다수당인 자민당은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성명을 내고 “지역사회와 도민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우익단체에서는 반대여론을 기회 삼아 혐한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일본군위안부 합의 때문에 일본이 손해를 봤다며 반대시위를 벌인 우익단체 ‘힘내라 일본! 전국행동위원회’는 “일본인에게 필요한 부지를 왜 한국에 넘겨주느냐”며 “한국학교 대신 일본인을 위한 복지공간을 만들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주도한 시위는 폭행사건으로 번져 시위대 중 일부가 체포됐다.

보수언론도 반일감정을 부추겼다. 산케이신문은 4일 보도에서 ‘한국인 학교’라는 점을 특정해 주민들이 반발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마치 한국인 학교가 주민들에게 기피 시설로 받아들여진다는 뉘앙스다. 이 신문은 보수단체 대표의 발언을 인용해 2014년 마스조에 요이치(69) 도쿄도지사가 방한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환대를 받고 한국인 학교 설립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 계획이 추진됐다고 보도했다.

마스조에 도지사가 ‘친한파’라는 점 역시 공격받고 있다. 이 신문은 마스조에 도지사가 2014년 2월 취임 뒤 세 차례 방한한 점을 트집 잡아 부지 선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 서울대 강연에서 “도쿄도민의 90%는 한국인을 좋아한다”고 강연했던 일도 끄집어내 공격했다.

당사자인 마스조에 도지사는 쏟아지는 비판에 개의치 않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비판이 있기 마련”이라며 “도쿄도민 1350만명 중 10%만 반대해도 135만명”이라고 답변했다. 또 2010년 서울시에서 오래된 일본인 학교를 위해 새 부지를 알선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부지 선정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협의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이 건물은 2017년 4월부터 한국인 학교로 쓰인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