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허용 어디까지… 수십억대 경제 효과 vs 드라마 몰입 방해

입력 2016-04-05 20:00

영화 ‘트루먼 쇼’에는 광고를 풍자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한다.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의 삶은 알고 보니 리얼리티쇼를 표방한 몰래카메라였고, 트루먼의 일상에 등장하는 소품들은 모두 광고상품이었다. 지금 우리의 방송 광고 환경도 ‘트루먼 쇼’와 비슷하다. 제작비가 간접광고(PPL) 업체에서 나오고, 협찬으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이게 시청자들에겐 그다지 이로울 게 없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PPL은 몰입을 방해하고, 원치 않는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게 불편하기도 하다.

◇드라마 시청률 대박, PPL·협찬 상품도 대박=‘별에서 온 그대’ 열풍이 불었을 때 ‘천송이 립스틱’이 중국 대륙을 들었다 놨다면, 이번엔 ‘태양의 후예’ 송혜교가 사용한 ‘강모연 립스틱’이 화장품 업계를 흔들고 있다. 인기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을 딴 ‘○○○ 화장품’ ‘○○○ 가방’ 등은 매번 입소문을 타고 완판(매진) 제품 대열에 서게 된다.

‘태양의 후예’에서 강모연 화장품만 히트 친 게 아니다. 송중기(유시진 역) 등 군인들이 간식처럼 먹는 홍삼, 송중기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 등도 대박 행진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태양의 후예’ 간접광고로 무려 1000억원이 넘는 광고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그램 안에 상품이 노출되는 것을 보통 PPL이라고 하지만, 모든 광고가 PPL로 규제받는 것은 아니다. 방송법상 PPL은 브랜드 이름을 있는 그대로 내보낼 수 있다. 대신 노출 시간이 방송 시간의 5% 이내로 제한 받는다.

‘강모연 립스틱’은 방송법으로 규제 받는 PPL이라기보다 일종의 협찬 제품이다. 이 경우 제품명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대놓고 노출시킬 수 없다. 하지만 눈썰미 좋은 시청자라면 충분히 어떤 제품인지 알아챌 수 있다. 광고주에 따라 각종 제약을 받는 PPL보다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대신 은근하게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협찬을 선호하기도 한다.

제작사 NEW 등에 따르면 ‘태양의 후예’는 PPL 수익만 35억원 가까이 올렸다. 간접광고가 드라마 제작에 중요하다지만 작품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광고 장면이 시청자들의 비웃음을 사는 경우도 적잖다. ‘시그널’은 작품성 높은 드라마로 호평 받았지만 내용과 상관없이 등장한 샌드위치나 화장품이 긴장도를 떨어뜨린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우리도 PPL은 늘 어려운 문제”라면서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작가도, 제작진도 가급적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능·웹툰에도 빠지지 않는 PPL=예능에서는 주로 ‘물’ ‘음료수’ 등 식음료 제품이 PPL로 나온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운동경기를 하거나 몸을 쓰는 대결을 할 때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 장면이 자연스레 많아지면서 식음료 협찬이 늘었다.

장소 협찬도 많아졌다. 촬영 장소를 제공해주고 ‘무한도전’ 촬영했던 곳, ‘런닝맨’이 다녀간 곳 등으로 알려지면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는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PPL을 애용한다.

최근 웹툰에도 PPL이 등장했다. ‘마음의 소리’ ‘치즈 인 더 트랩’ ‘가우스 전자’ ‘생활의 참견’ 등 일상을 담은 인기 웹툰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그려 넣는 식이다. 주로 플랫폼 업체가 광고주와 계약을 맺고 작가와 수익을 배분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작품성을 해치지 않고 몰입에 방해하지 않는 정도를 고려해 조율 한다”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