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밖 관객 모독 ‘舌禍’ 웰메이드 공연 ‘위태위태’

입력 2016-04-04 19:43 수정 2016-04-04 21:46
1980년대 언론통제를 소재로 한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엘에스엠컴퍼니 제공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 ‘보도지침’은 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의 언론통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주목을 모았다. 오세혁이 쓰고 변정주가 연출한 이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 당시 언론계에서 자행되던 상황을 법정극으로 풀어냈고, 배우 이명행과 송용진 등의 열연이 더해져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작사인 엘에스엠컴퍼니 이성모 대표가 인터뷰에서 20∼30대 여성 관객을 비하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 대표는 작품을 제작한 계기에 대해 “2014년 여름이었다. 당시 공연계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침체되어 있었고, 공연계 전반적인 분위기가 20∼30대 젊은 여성을 겨냥한 저가의 가벼운 공연이 넘쳐날 때였다. 그런 상황을 탈피해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수 있는 공연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보도지침’의 홍보 책자에 실렸다.

이와 관련, 한국 연극계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30대 여성 관객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 대표는 논란이 일자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보도지침’은 처음 예매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높은 예매율을 자랑했지만 논란 이후 수백 장의 티켓 예약 취소 사태가 벌어졌다.

제작사 관계자들의 관객 비하로 인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뮤지컬 ‘쓰릴 미’의 연출가가 트위터상에서 지인과의 대화 도중 ‘회전문 관객’으로 불리는 열성 관객을 비하한 것이 알려져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뮤지컬 ‘라카지’, 2013년 ‘두 도시 이야기’, 2014년 ‘지킬 앤 하이드’ 등 여러 작품에서 일어났다. 최근엔 프랑스 뮤지컬 ‘아마데우스’ 내한공연에 출연 중인 배우 로랑 방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칭챙총’을 사용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사과하기도 했다. 이들 작품 역시 ‘보도지침’과 마찬가지로 티켓 판매에 타격을 입었다.

공연계에 잇따른 관객 비하 논란은 기본적으로 제작진의 태도에 책임이 있다. 제작진이 한국 공연계를 지탱하고 있는 관객을 무시한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옳지 않다. 어떤 공연이든 관객 없이 결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자면 20∼30대 여성 관객도 이제 논란은 뒤로 하고 이 연극을 작품 그 자체로 봐주면 어떨까. ‘보도지침’은 객석을 비운 채로 가기엔 아까운 작품이라는 게 공연계의 일반적인 평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