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군 당사도에서 10년째 사역 중인 박정남(73·등대교회) 목사가 의식을 잃은 건 지난 1월 초였다. 속이 좀 불편하고 대변을 보기 힘든 정도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위 내시경 검사를 한 동네 병원 의사는 “얼른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라”고 말했다. 아내 김현옥(69) 사모와 함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박 목사는 위암 판정을 받았다. 사모는 3일 전화통화에서 “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걱정을 덜었지만 당뇨도 있고 어깨와 허리가 안 좋았던 상황에서 암 판정까지 받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 매주 한 차례 대한민국 최남단 섬마을에서 서울을 오가는 일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당사도에서 배를 한 번 갈아타고 완도 화흥포항으로 나오는 데만 1시간 40분. 또 완도에서 버스로 5시간 30분을 달려야 겨우 서울에 도착했다. 김 사모는 “몸도 몸이지만 한 번 오가는 데 15만원 넘게 드는 왕복 교통비와 보험 적용도 안 되는 검사·치료비 등 현실적 부담이 컸다”면서도 “하지만 감사하게도 낙도선교회와 평소 사역을 후원해주던 교회의 도움으로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지난달 21일 수술을 마친 뒤 2주 만에 당사도로 돌아왔다. 한 달 새 체중이 10㎏이나 줄어 급선무는 체력을 회복하는 게 됐다. 그동안 몸이 불편한 박 목사를 부축해 간병해 왔던 사모도 허리 통증이 심해져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기도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며 함께 기도해 준 등대교회 성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서울과 천안에서 사역하던 김 목사 부부는 2004년 교회가 없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기로 결단하고 2년 넘도록 배를 타고 낙도 지역을 탐방했다. 크고 작은 섬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 당사도에 정착한 것이 2007년 4월. 배타적인 주민들 때문에 복음의 문이 닫혀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
김 사모는 “목사님과 ‘죽으면 죽으리라. 선한 싸움을 해보자’고 결단하고 들어갔다”며 “손재주가 좋은 목사님이 동네를 다니면서 망가진 물건을 고쳐주고 짐도 들어주니 서서히 주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사도에 하나뿐인 등대교회의 규모는 단출하다. 성도 수는 10명을 넘긴 적이 없다. 지금은 성도 세 명과 박 목사 부부까지 다섯 명이 예배를 드린다. 목재와 슬레이트 패널로 지어진 10평(33㎡)짜리 예배당은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새 박 목사 부부가 걸레질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김 사모는 “복음 자체가 없던 땅에 씨를 뿌리고 10년째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웃었다. 박 목사 부부는 “당사도 주민이 25명 정도”라며 “아직 십자가의 사랑을 모르는 분들에게 천국 가는 그날까지 복음 전하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어려운 교회를 도웁시다-완도 등대교회] 위암 투병하며 낙도에서 사역 선교의 등댓불 꺼지지 않도록…
입력 2016-04-04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