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추억 어린 車, 예술이 되다…‘브릴리언트 메모리즈’ 展

입력 2016-04-04 19:45

자동차는 추억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조구란씨에게도 그렇다. 올해 초 2001년식 7인승 산타모와 이별하는 날 가족은 기념촬영을 했다. 널찍한 뒷자리를 놀이터 삼아 놀던 아이들, 별을 봤던 강원도 여행, 남편과 다투고 혼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펑펑 울던 일….

갖가지 추억이 얽힌 조씨네 가족의 ‘애마’ 산타모의 라디오 기기가 폐차 직전에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김진희 작가는 라디오 기기를 미세 해체해 비눗방울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 ‘천개의 기억’(사진)을 만들었다. 작품에선 음악 소리가 나오는데, 차 뒷좌석에 앉아 재잘거리는 조씨네 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오는 듯하다.

현대차의 차를 활용한 예술 후원 활동 ‘브릴리언트 메모리즈’가 올해 2회를 맞았다. 차에 얽힌 고객의 감동 사연을 공모한 뒤 작가에게 폐차를 활용한 현대미술 작품을 제작하도록 지원한다. 지난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첫 전시를 열었던 현대차는 올해에는 서울 노원구의 북서울미술관을 택했다. 예술 인프라가 강남에 비해 취약한 강북의 서민 동네를 골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원홍 현대차 부사장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알파고의 시대가 열렸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의 가치는 중요하다”면서 “자동차는 기계가 아닌 삶의 동반자이자 추억의 일부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올해 전시에는 김기라·김형규 팀, 전준호, 정연두, 김승영 등 중견·신인 작가 12명이 참여했다. 박문희 작가는 정혜란씨의 2000년식 포터를 해체해 사막에서 핀 생명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교통사고로 다리 수술을 한 정씨의 남편에게 포터야말로 재기의 기회를 준 차였다. 사진작가 이주용은 21년 가족의 역사와 동행해온 안익현씨의 그레이스를 홀로그램과 깃털을 매개로 꿈과 판타지의 공간으로 제시했다. 전준호의 키네틱 아트, 정연두의 사진 같지 않은 사진 작품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1일까지(02-2124-892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