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주석은 지난 2010년 10월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돼 사실상 차기 중국 지도자로 확정됐다. 미국은 이 ‘미스터리 황태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의 지휘 아래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과 국무부 등 행정부처가 총동원돼 모든 정보를 모았다. 양국 협의에 따라 조 바이든 부통령은 수차례 시 부주석을 만나 그의 마음을 읽는 데 정성을 쏟았다.
미국은 결과적으로 시 주석의 흉중에 뭐가 있는지 아는 데 실패했다. 당시 미 정부 내에서는 그가 집권하면 미국과의 접촉을 더욱 넓히는 과감한 개혁에 나설 것이라거나 미국과의 갈등을 피한 채 시간을 버는 안보 전략을 택할 것이라는 등의 예측이 나왔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이 중국 개혁·개방의 지휘자 덩샤오핑의 오른팔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합리적 개혁주의자 시진핑의 이미지는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외교·안보 전문기자 데이비드 생어에 따르면 시 주석 취임 1년도 지나지 않아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리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에다 대결을 회피하지 않는 위험 감수자(risk taker)라는 그의 이면을 보지 못했음을 자인했다.
보다 직설적인 의견도 있다. 전략정보 분석업체 스트랫포 창립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지난해 9월 “시진핑의 말은 정중하고 온건하지만 그는 실로 무서운(scary)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시 주석이 수십년간 중국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무자비하게 모든 정적들을 제거해 살아남았다면서 향후 행동도 이러한 경험에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논란이 커지고 있는 중국 당국의 철저한 사상·언론 통제, 인권·사회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 지식인 등 반대파들에 대한 납치·연금의 일상화는 프리드먼이 통찰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 관측통들이 시 주석에 대해 가졌던 대부분의 기대를 접은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중국 체제를 비판하는 ‘금서’를 취급해 온 홍콩 출판업자 4명 실종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중국 공안 당국이 이들을 중국으로 납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중국 공안은 홍콩에서 홍콩 시민을 체포하거나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한 홍콩기본법마저 무시한 것이 된다. 중국의 기본 통일 원칙인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마저 위협하는 ‘선’을 거침없이 넘은 것이다.
프리드먼 등 일부 ‘중국 회의론자’들이 일찍부터 언급해 온 ‘가차 없다(ruthless)’는 시 주석의 성향에 갈수록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저명한 중국 전문가 앤드루 네이선 미 컬럼비아대 교수 등은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급증한 중국에서 이러한 통치 방식이 안정을 이뤄내지 못하며, 시 주석의 권력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시 주석의 가차 없음은 대외 부문에서는 남중국해 등에서 민족주의에 의탁한 공세적 확장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시 주석이 덩샤오핑의 외교정책 기조인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를 포기해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초래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연합해 중국 봉쇄에 적극 나서게 된 빌미를 줬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경제 성장 둔화가 지금까지 중국발 리스크의 전부였다면 앞으로는 시 주석의 강압 통치에 대한 내부 불만 증가로 정치 불안이 중국 리스크의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배병우 국제부 선임기자 bwbae@kmib.co.kr
[돋을새김-배병우] 무서운 시진핑
입력 2016-04-04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