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선거의 품격

입력 2016-04-04 17:45

승패를 가려야 하는 선거는 흔히 제로섬 게임으로 불리나 실상은 마이너스섬 게임이다. 패자가 승자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상대가 많을수록 튀어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남들과 똑같은 선거운동으로는 유권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면 외려 해가 되는 법,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그렇다.

트럼프를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 주자로 만든 최대 요인은 거침없는 입담이다. 기존 정치인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직설화법에 주요 지지기반인 백인 중산층이 호응하자 그의 어투는 더욱 과격해지고 극단으로 치달았다.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은 물론 “무슬림 입국을 전면 통제해야 한다” “경찰을 살해한 자는 무조건 사형” “테러리스트를 잡으려면 그들의 가족부터 족치면 된다”는 등 그의 망언 시리즈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여성 비하도 서슴지 않던 그가 ‘낙태여성 처벌’ 발언으로 제대로 걸렸다. 위스콘신 경선을 앞두고 지난달 30일 “불법으로 낙태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한 발언에 대한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지자 여론에 개의치 않던 그도 말을 바꿨다. 여기서 패할 경우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 확보가 어려울 수 있어서다. 막말이나 일삼는 트럼프가 1위를 달리는 공화당 경선, 막장도 이런 막장이 통하는 미국 민주주의도 별것 아니다. 오죽했으면 존 케리 국무장관이 “국가적 창피”라고 했을까.

곧 내렸다지만 국민의당 권은희(광주 광산을) 후보가 ‘박근혜 잡을 저격수…’ 선거 포스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행위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군복 차림의 권 후보가 총으로 조준한 표적이 누구인지 분명하다. 인기 드라마에 편승해 ‘송중기 따라하기’ 해보려다 제 발등 찍는 도끼가 됐다. 모로 가도 당선만 되면 그만일지 몰라도 선거운동 방식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한방에 훅 간다’는 말이 유행인데 이 경우가 해당될 것 같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