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흰색 유니폼의 키 큰 선수가 짙은 감색 유니폼의 한 선수를 쓰러뜨렸다. 강력한 보디체크를 당한 동료가 빙판위에 나뒹굴자, 다른 팀원들이 보디체크를 가한 선수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고 선혈이 낭자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사할린 크리스탈아이스아레나에서 2015-2016 아시아리그 플레이오프 파이널 안양 한라 대 사할린의 5차전(5대 3 승). 2승2패로 팽팽한 두 팀은 마지막 1승을 위해 사투를 시작했다.
안양 한라의 간판 공격수이자 이번 아시아리그 득점왕, 마이크 테스트위드(29)는 196㎝, 98㎏의 거구를 날려 사할린 소속 러시아 선수를 ‘보디체크’했다. 그는 다른 사할린선수들에게 보복성 집단구타를 당했고, 눈 주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게 됐다. 경기 시작 1분여만에 벌어진 이 장면은 이후의 경기를 지배했다. 한라 선수들은 테스트위드의 강력한 정신력에 눈이 번쩍 뜨였고 똘똘 뭉쳐 ‘사할린의 기적’을 만들었다.
원정 시작 전 1승2패였던 한라는 원정 2연전을 연승으로 마감, 6년 만의 통합우승(정규리그·플레이오프 석권)을 달성했다.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국내 선수와 귀화 선수들의 완벽한 조화와 물러설 줄 모르는 투혼이었다.
원정전이 쉽진 않았다. 이동 거리가 멀고 날씨도 추워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한라엔 구단주인 정몽원 회장이 강조하는 근성이 있었다.
통합우승 지휘자는 이리 베버 감독이었다. 베버 감독은 2014-2015 시즌을 앞두고 한라 사령탑에 올랐다. 아이스하키 강국인 체코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인 베버 감독은 수비에 비중을 많이 뒀다. 수비가 안정되자 김기성, 박우상, 신상훈, 브락 라던스키, 마이크 테스트위드 등 공격수들을 신바람을 냈다. 한라는 이들을 앞세워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사상 최다 승점(114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귀화 선수들의 조화는 한라를 더욱 강하게 했다. 4차전(1대 0 승)의 영웅은 라던스키였다. 그는 경기 종료 6초 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5차전으로 넘겼다.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골리 맷 달튼은 사할린을 상대로 선방쇼를 펼쳤다. 달튼 합류 후 한라의 실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가 한라 골문을 지키기 전인 2013-2014 시즌 경기당 2.62골을 내줬던 한라는 지난 시즌 2.31실점을, 이번 시즌 1.79실점을 기록했다.
5차전에선 신상우-신상훈 형제가 펄펄 날았다. 둘은 3골을 합작해 내며 한라의 극적인 정상 등극을 이끌었다. 신상훈은 1피리어드 5분 17초에 형 신상우의 어시스트를 받아 선제골을 터뜨렸다. 신상우는 한라가 2-1로 앞서 있던 2피리어드 15분 43초에 김기성의 어시스트로 추가골을 넣었다. 3-3으로 팽팽히 맞서 있던 3피리어드 18분엔 신상우가 신상훈의 어시스트를 받아 결승골을 꽂아 넣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한라 아이스하키 사할린 정복하다… 아시아리그 PO 극적 역전극
입력 2016-04-04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