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64> 영화가 된 노래들

입력 2016-04-04 17:44
‘I Walk the Line’ 포스터

그레고리 펙의 영화치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I Walk the Line(1970)’을 봤다. 작은 마을의 나이 지긋한 유부남 보안관이 젊은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의무와 욕망, 법과 폭력, 명예와 수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는 내용이다. 존 프랑켄하이머가 연출하고 펙이 주연했음에도 영화 자체는 그다지 신통치 않다. 오히려 영화보다 영화가 제목을 차용한 조니 캐쉬의 노래가 더 돋보인다.

이 노래는 ‘미국판 트로트’라 할 수 있는 컨트리 앤드 웨스턴 장르의 명곡이다. 한때 이 분야의 제왕으로 불렸던 조니 캐쉬(1932∼2003)가 1956년에 발표한 그의 최고 히트곡. 그래서 이 노래는 2005년에 호아킨 피닉스 주연으로 만들어진 캐쉬의 전기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다. 다만 이때는 ‘I’가 빠진 ‘Walk the Line’이었다. 이 영화와 펙이 주연한 ‘I Walk the Line’을 혼동하지 말 것.

펙의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가 된 노래’들이 떠올랐다. 보통 영화음악이라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을 말하지만 때로는 음악이 먼저이고 영화가 그 뒤를 따라 만들어진 경우들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가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가 공연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프리티 우먼(Pretty Woman, 1990)’이다. 알다시피 이 제목은 로이 오비슨의 1964년 곡 ‘Oh, Pretty Woman’에서 따왔다. 이 노래는 무려 700만장이나 음반이 팔린 오비슨의 최대 히트곡이었다.

또 괴짜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블루 벨벳(Blue Velvet, 1986)’도 있다. 공포와 누아르를 결합한 신(新) 누아르 미스터리물로 분류되는 컬트 걸작. 영화 제목으로 쓰인 노래는 당초 토니 베넷의 1951년 곡이 오리지널이지만 영화에 삽입된 바비 빈튼의 1963년 리메이크가 훨씬 더 유명하다.

이와 함께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블랙코미디 SF ‘브라질(Brazil, 1986)’과 알 파치노가 주연한 스릴러 ‘Sea of Love(1989)’도 빼놓을 수 없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