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국고보조금] ‘내 식구’ 감싸고 “인력·시스템 탓” 책임전가

입력 2016-04-04 04:00 수정 2016-04-04 18:36



한 정부부처는 국민일보의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현황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행정조사를 통해 파악한 숫자가 있지만, 신뢰성 있는 숫자가 아니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고보조금을 교부해 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자료를 취합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누락된 게 많아 공개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어디에서, 얼마나 새는지를 파악한 공신력 있는 통계조차 없는 셈이다. 이 정부부처 관계자는 “전체 부처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왜 ‘나랏돈 씀씀이’ 파악 안 되나

2013년 감사원의 국고보조금 실태 감사(2300억원), 2014년 검찰과 경찰의 합동조사(1700억원) 등으로 국고보조금에서 ‘혈세 누수’가 거듭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국고보조금 중 얼마가 잘못 쓰이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8월 국무회의에서 “어떻게 하면 혈세가 낭비되지 않고 정말 써야 될 곳에 쓰이게 될지 다시 점검해 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월 국고보조금 비리 근절 등 ‘부패방지 4대 백신’을 가동하겠다고 거듭 발표해야 했다.

정부부처들은 “악의를 가지고 달려들면 방법이 없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적발하지 않으면 부정수급 색출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각 부처에서 국고보조금 관리감독을 맡은 인력은 1, 2명에 불과하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 출신의 한 검사는 “해마다 수십조원의 국고보조금이 집행되지만 이를 관리하는 인력은 부처마다 한두 명 수준”이라며 “어떻게 집행이 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고 전했다.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각 부처를 거쳐 지자체와 민간사업자로 흘러가는 국고보조금을 추적하는 통합시스템은 현재 없다. 기재부 등이 ‘디브레인’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국고보조금을 관리하는 반면 지자체는 ‘e호조’라는 지방재정관리시스템을 쓴다. ‘에듀파인’(교육부) ‘행복기금’(보건복지부) 등 독자 회계정보시스템을 쓰는 부처도 있다. 기재부는 내년 중 시행을 목표로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 구축 작업에 착수했다.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징계를 하더라”

인력과 시스템 탓만 하기엔 공무원들의 자세가 미온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3일 “수사가 아니면 국고보조금 누수를 밝힐 수 없다는 항변이 꼭 맞는 건 아니다”며 “부처에서 적정집행 여부를 의심할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있는데, 스스로가 쉬쉬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각 부처가 아주 작은 단초만 제공해도 큰 비리를 색출한 사례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서울서부지검, 천안지검,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등에서 활발한 수사가 이뤄졌던 국민주택 전세자금 대출사기 사건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직원의 적극적인 수사의뢰가 구조적 비리를 잡아낸 계기였다. 허위 전세계약서로 보증금만 받고 잠적하는 유령업체들이 적발돼 300여명이 구속됐다.

검찰은 각 부처가 수사의뢰나 고발을 망설이는 눈치라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 내부자 연루 등이 있을까봐 몸을 사리는 것이다. 산학협력단을 통한 대학교수의 연구개발 비리 등 성공적 수사를 이끌어낸 내부고발자들은 시간이 흘러 되레 배신자 취급을 받고 징계 등 불이익을 받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동티가 난 뒤에야 각 감사부서가 비로소 진정·고소를 진행하는 관행을 버리고, 부패척결추진단과 협업하거나 검사를 파견 받는 등의 적극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고보조금 재정누수 사건 수사가 인식과 관행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법무부는 2013년 11월부터 검찰국장 주재로 각 부처들과 ‘클린 피드백’ 회의를 열고 범정부적 국고보조금 비리 근절책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까지 환경 관련 중소기업 연구개발 보조금 유용, 병원의 위탁급식업체를 통한 식대가산금 편취, 고령자 정년연장 지원금 부정수급 등이 심층 논의됐다. 각 부처에서 제도개선안에 공감했지만, 보조금 수급요건 검증 장비·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검증제도 강화에는 더러 난색을 표했다고 법무부는 밝혔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