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 구자철 ‘분데스리가 드림’… 구자철, 시즌 최다 8호골 작렬

입력 2016-04-04 04:00
구자철(왼쪽)이 3일(한국시간) 독일 마인츠의 코파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5-2016 분데스리가 마인츠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 다툼을 하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 홈페이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키가 146㎝밖에 되지 않았다. 소년은 훈련 중 갈증이 나면 물 대신 우유를 마셨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 키는 183㎝가 됐다. 고교 시절엔 빈혈로 쓰러졌다. 철분제를 먹어 가며 버텼다. 프로시절 발이 느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라산을 전력질주로 오른 것이 50여 차례. 고비마다 부상과 슬럼프가 찾아왔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타고난 재능은 부족하다. 그러나 남다른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선수다.” 축구 전문가들이 구자철(27·아우스크부르크)에 대해 내리는 평가다. 유럽에서 가장 한국인다운 선수로 꼽히는 구자철이 자신의 분데스리가 정규리그 최다골 기록을 갈아 치우며 축구인생의 황금기를 활짝 열고 있다.

구자철은 3일(한국시간) 독일 마인츠의 코파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5-2016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와의 경기(아우크스부르크 2대 4 패)에서 전반 40분 페널티지역 오른쪽 측면에서 마르쿠스 포일너가 내준 크로스를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골을 터뜨렸다. 시즌 득점을 8골로 늘린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은 마인츠 소속이던 지난 시즌 기록한 7골을 넘어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다골 신기록을 세웠다. 구자철은 남은 5경기에서 2골을 추가하면 차범근, 손흥민 이후 분데스리가에서 세 번째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한국인 선수가 된다.

2007년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구자철은 4년간 70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2010 시즌엔 5골 12도움을 올리며 K리그 중위권 팀이었던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011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며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2010-2011 시즌 10경기에 출장했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구단으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슬럼프에 빠졌다. 그는 2011-2012 시즌 후반기에 분데스리가 하위팀 아우크스부르크에 임대됐고, 여기서 ‘임대 신화’를 썼다. 임대 직전까지 12경기에 출전해 단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던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15경기에서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을 영입한 후 5승7무3패를 기록, 14위에 올라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2시즌 연속 아우크스부르크의 1부리그 잔류를 이끈 구자철은 2014년 1월 마인츠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마인츠에서 7골을 넣은 구자철은 이번 시즌 궁합이 좋은 아우스크부르크로 다시 돌아와 분데스리가 23경기에서 8골을 넣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구자철은 늘 시련을 겪으며 성장했다. ‘홍명보의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던 그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축구인생 중 가장 쓰라린 좌절감을 맛봤다.

그런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강한 정신력과 사명감이다. 그의 아버지 구광회(56)씨는 24년간 공군 전투기 F-16 정비사로 복무하다 사고로 눈을 다쳐 2002년 의가사제대를 했다. 구자철은 스스로 나태해졌다고 느낄 때면 “늘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런 투혼에 독일 선수들도 경의를 표한다.

‘마당쇠’ 스타일인 구자철은 현지 적응력이 뛰어나다. 소속팀 동료 홍정호(27)와 지동원(25)은 “(구자철은)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즐기는 스타일”이라며 “무엇보다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라 우리보다 훨씬 수월하게 독일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늘 즐기면서 축구를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축구는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나 큰 열정을 갖고 뛰느냐가 중요하다.” 구자철이 축구를 대하는 자세다. 분데스리가 6년차인 그는 이번 시즌 축구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