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커피트럭으로 전국 여행하다 시골카페 차린 김현두씨

입력 2016-04-03 18:05 수정 2016-04-03 21:03
김현두씨가 전북 진안의 ‘카페 공간 153’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고원의 밤’이라는 문화공연을 열고 있다.
위 사진은 김씨가 여행할 때 타고 다녔던 분홍색 커피 트럭이고 아래 사진은 카페 카운터 뒤쪽에 걸린 ‘예수 중독자’라는 고(故) 손양원(1902∼1950) 목사의 글이 새겨진 현판.
청년은 분홍색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 두진 않았다. 바람처럼 돌아다니다 머물고 싶은 곳이 나오면 멈췄다. 아버지가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경비는 트럭에서 드립커피를 팔아 마련했다. 그렇게 2년여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작은 예수’를 만났다. 텐트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흔쾌히 앞마당을 내준 사람도 있었고, 파지를 주워 판 돈으로 시골 아이들 공부방을 운영하는 목사도 있었다.

“힘들고 궁핍한 여행이었지만 전국을 돌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분들인 것 같아요. 그렇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미는 삶을 살았어요. ‘이런 게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김현두(34)씨는 지난해 9월 30일 여행을 멈추고 전북 진안의 작은 시골마을에 카페를 차렸다. ‘카페 공간 153.’ 단순히 커피를 팔고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고원의 밤’이라는 문화공연을 열고 동네 아이들을 초청한다. 그가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시골 아이들과 나누고, 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싱어송라이터 정예원, 사진작가 송재한, 개그맨 이정규, 콘트라베이시스트 이동희, 밴드 오혜주 등이 이곳에서 시골 아이들을 만났다. 최근엔 포크가수 ‘이내’가 공연했다.

‘카페 공간 153’은 전국을 여행할 때 트럭에 붙이고 다녔던 명칭 그대로다. 153은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던진 그물에 잡힌 물고기 수다. 이를 물질적 축복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무조건적인 순종’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어부였지만 예수님 말씀에 그냥 순종했어요. 저도 크리스천으로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여행을 할 때나,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이 ‘153’의 의미를 물으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그 점도 좋았습니다.”

지난달 22일에 찾은 카페엔 예수님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카운터 뒤쪽엔 ‘예수 중독자’라는 제목의 고(故) 손양원 목사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하겠다.…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화장실엔 ‘내가 오늘 누군가를 위해 울었을지라도, 내가 오늘 죽은 사람을 살렸을지라도, 매일 기도와 말씀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적힌 글귀와 일러스트가 걸려있었다. 벽화를 그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디자이너 박효빈씨의 작품이다(국민일보 3월 17일자 25면 참조). 교회에 가는 교인이 구걸하는 걸인을 외면하는 그림, 테이블 위에 세워진 목조 십자가도 눈에 띄었다. ‘여행은 일상이 되고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배우 조달환의 글씨도 보였다. 조달환도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다.

김씨는 여행을 하다 거리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한 단상을 블로그에 적곤 했다. 지난해 5월 12일 그는 한 시외버스터미널에 있는 긴 의자 위에 한 아저씨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이런 글을 적었다.

‘저 의자는 어느 교회 예배당에서 쓰였던 의자인 것 같다. 그곳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저씨의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이 시대의 교회가 저렇게 세상 속에서 편안한 안식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왜 작은 시골마을에서 묵묵히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진안=글·사진 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