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에 매각되는 현대증권은 1999년 3월 ‘바이코리아 펀드’를 출시해 증권가에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한국을 사자’는 모토 아래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주식형 펀드’ 개념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4개월 만에 전체 수탁액 11조원을 기록했다. 당시 한 달에 1억원을 성과급으로 가져간 현대증권 직원도 있었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자고 일어나면 돈이 쌓인 셈”이라며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성과”라고 말했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외환위기로 침체된 한국 경제에 활력소가 됐다. 벤처 붐 효과도 톡톡히 봤다. 하지만 영광은 잠시였다. 1999년 8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사태로 국내 증시가 곤두박질쳤고 바이코리아 펀드에서도 돈이 빠져나갔다. 주식혼합형 펀드 수탁고만 6개월 만에 3조원에서 5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바이코리아 펀드의 1등 공신이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같은 해 9월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확정받았다.
바이코리아 펀드를 운용한 현대투자신탁운용은 2004년 푸르덴셜그룹에 매각됐다. 바이코리아 펀드명에서 바이코리아가 삭제됐고 ‘푸르덴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르덴셜자산운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다시 한화그룹에 팔렸다.
한화자산운용은 2011년 옛 바이코리아 펀드에 ‘코리아레전드’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2014년 상반기 기준 수탁고가 600억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서서히 부활에 성공, 지난 2월 기준 1년간 상대수익률 상위 13%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수익률 5%에 수탁액은 12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화자산운용 강신우 대표는 당시 현대투신운용에서 근무하며 바이코리아를 직접 운용한 인연이 있다. 강 대표는 지난해 7월 페이스북에 바이코리아 펀드의 부활에 대해 “감개무량하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현대증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바이코리아 펀드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현대증권은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한화서 부활 성공한 ‘바이코리아 펀드’
입력 2016-04-03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