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폐하, 손수 금관을 수습하시지요.”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는 경주 노서리 129호분을 발굴했다. 앞서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 금관이 발굴된 뒤라 추가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큰 상황이었다. 일본 왕실은 당시 일본에 신혼여행 중이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1882∼1973)에게 조선의 고분 발굴 참여를 권했다. 그는 고고학자로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황태자는 마지막 순간, 신라의 옛 무덤에서 봉황 장식의 금관(보물 제339호·서봉총 금관)을 꺼내는 행운을 누렸다. 서봉총이라는 명명을 얻는 순간이기도 했다. 서봉총은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봉황’ 장식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것이다.
서봉총이 90년 만에 정식 발굴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1일부터 10월까지 서봉총을 발굴한다고 3일 밝혔다. 서봉총은 표주박 형태의 무덤인데, 일제 강점기의 조사는 학술적 목적이 아니라 철도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봉분의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부실 조사였다.
당시 높이 35㎝, 지름 18㎝의 서봉총 금관을 비롯해 금공예품, 토기, 철기, 장신구 등 유물 570여점이 출토됐다. 그때까지 신라 무덤의 금관 출토는 금관총(1921) 금령총(1924)에 이어 세 번째다.
당시 서봉총 조사 책임자였던 고이즈미 아키오는 평양부립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1935년 이 금관을 기생 머리에 씌우고 사진을 찍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제는 서봉총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남기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에야 발굴 조사 보고서를 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무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확인하고, 시신이 묻힌 매장주체부 주변에서 유물을 찾아낼 계획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조사에서 나무 덧널을 덮은 돌무지를 얼마만큼 해체했는지 알 수 없어서 조사 기간을 예상하기는 어렵다”면서 “발굴 현장은 지난해 금관총 조사 때처럼 일반에 공개된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스웨덴 황태자가 신라 금관을?
입력 2016-04-03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