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봇의 하나님, 세월호의 하나님

입력 2016-04-03 18:13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나봇이란 사람에게 그의 포도원을 달라고 합니다(왕상 21:2). 하지만 나봇은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줄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이 분배된 이후 땅을 매매하지 않도록 한 율법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나봇은 왕과 자신의 관계보다 자신과 하나님 간의 언약을 더 소중히 여긴 듯합니다. 나봇에게 거절당한 후 아합은 수치감으로 고민에 빠졌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계략을 꾸밉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소문을 낸 것이지요. 그리고 금식하며 율법에 따라 증인까지 만들어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법에 따라 나봇을 돌로 쳐 죽이도록 합니다. 나봇은 무고하지만 이렇게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이렇게 끝내실 셈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열왕기 말씀은 여기서부터 눈을 더 크게 뜨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더 주목하는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나봇이 죽어 사라졌다 해서 하나님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봇 없는 세상에 하나님이 현존해 계심을 증명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엘리야의 등장입니다. 엘리야는 나봇이 죽은 뒤 손쉽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드는 아합을 막아섭니다.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 그들의 자녀가 모두 죽으리라고 예언합니다(왕상 21:19). 하나님이 이들을 사형시키실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철두철미하게 합법을 가장해 살인을 저지른 아합과 달리 하나님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합은 유다와 연합해 싸우던 중 표적이 될까 두려워 왕복을 벗고 일반 병사 행세를 합니다. 그러다 어느 병사가 ‘무심코 당긴’ 화살에 맞았습니다. 전쟁이 너무 치열해서 빨리 치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모든 것이 우연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열왕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다스림은 무심코 쏜 화살로도 이뤄질 수 있는 파격적인 섭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신앙의 실존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보이는 법적 절차, 종교적 절차보다 더 깊은 자리에 신앙은 서야 합니다. 바로 온 만물과 역사적 상황을 다스리는 하나님 현존의 자리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피해가 가족들의 고통은 너무나 커진 상황인데 2차 청문회까지 했지만 책임 소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사람의 눈을 가리고 악을 합법적으로 감추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악에 대한 재판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기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때입니다. 불의가 정의를 비웃고, 권력이 약자를 조롱하고, 억울함이 여전히 신원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선 안 됩니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약자가 권력에 정당하게 소리를 내며, 억울한 부모의 기도가 하나님께 전달돼 진실이 드러나는 소망이 가득 찬 세월이 되어야 합니다. 민감하게 하늘을 향해 귀를 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야 할 때입니다. 구약의 나봇의 하나님은 오늘날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이들과 악을 감추려는 이들을 각각의 방식으로 다스리시는, 현존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김성률 목사 (인천 함께하는교회)

약력=1977년 경기도 파주 출생, 총신대 신대원 졸업. 교회2.0목회자운동 실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