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최대 승부처는 수도권이다. 인구가 밀집해 있어 선거구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올해도 전체 253개 선거구 중 122곳이 서울·인천·경기에 몰려 있다. 여야 모두 수도권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수도권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가 호남표심이다. 호남인의 단결된 힘이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이는 수도권 선거구의 승패를 가른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랬던 호남이 4·13 선거운동이 한창인 요즘 요동치고 있다. 야권분열 탓이다. 종전까지 호남은, 속된 말로 야당에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그런 곳이었다. 총선 때 선거운동이 과열된 적도 거의 없고 주목받은 적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치열하게 호남 쟁탈전을 벌이면서 관심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호남 총선 현장에서 두 야당이 격돌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호남에 대한 두 야당의 러브콜은 때론 진하고, 때론 격하다. 호남을 잡아야 야권의 적자(嫡子)로 인정받아 수도권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읽힌다.
졸지에 ‘터줏대감’ 자리에서 밀려난 더민주의 경우, 김종인 대표가 벌써 두 차례 호남을 방문했다. 친노로 인해 냉랭해진 호남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일정이다. 연설을 통해선 국민의당과 국민의당 후보를 겨냥해 날을 세웠다. 국민의당에 표를 주면 정권교체 방해 세력을 키우는 셈이고, 호남에 출마한 국민의당 후보들은 자기들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사람들뿐이라는 게 요지다. 이에 맞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2일과 3일 호남을 찾아 더민주의 뒤집기 시도를 차단하는 동시에 세 확산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호남을 홀대한 문재인 전 대표로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으니, 국민의당을 지지해달라고 강조했다. 더민주가 국보위에서 일했던 사람(김종인)에게 당권을 맡긴 건 5·18 영령을 배신한 행위라는 비판도 계속됐다.
참고로, 더민주 광주시당이 내건 슬로건은 ‘시민의 밥상을 책임지는 진짜 야당 더불어민주당’ ‘가짜 야당 심판론’이다. 국민의당 광주시당은 ‘야권재편! 정권교체! 광주시민의 선택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판세는 더민주보다 국민의당이 앞선다. 안 대표는 광주·전남·전북의 28개 모든 선거구를 석권하겠다면서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20석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더민주는 최대 16곳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8곳이 ‘우세’로 분류됐을 정도다.
호남 유권자들은 아직 혼돈 상태다. 친노 수장 격인 문 전 대표와 국보위 전력을 가진 김 대표를 떠올리면 더민주를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새누리당의 압승을 저지할 야권연대에 소극적인 국민의당을 밀어주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는 정서가 병존하는 것 같다. 어느 쪽이 최종 승리를 거둘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두 야당의 ‘호남 성적표’는 향후 정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계속 이목을 끌 것이다. 총선 이후 지금까지 우리 정치를 지탱해왔던 양당체제가 3당체제로 전환되면서 정치혁신의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대선주자별 부침이 뒤따르면서 내년 대선 기상도가 변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가깝게는 야당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투쟁 위주의 행태로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 패거리 정치도,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치도 안 된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야당상이 재정립돼 ‘이만하면 됐다’는 평가가 내려질 때까지 야당끼리 건전한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만들어졌으면 싶다. 그 키를 호남이 쥐고 있다. 이래저래 호남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호남의 선택이 중요하다
입력 2016-04-03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