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제2, 제3의 도이 키워 동북아 ‘복음의 연대’ 이뤄야”

입력 2016-04-03 17:37 수정 2016-04-03 20:18
한일기독의원연맹 일본 측 지도목사를 맡은 미네노 다츠히로 요도바시교회 담임목사(가운데)가 한국 측 공동대표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왼쪽) 및 상임고문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와 함께 지난달 26일 도쿄의 한 사무실에서 한·일 관계와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특별 좌담을 갖고 있다.
도이 류이치 전 중의원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들려온 도이 류이치(사진) 전 중의원의 서거 소식은 양국의 화해를 바라는 이들에게 비보가 아닐 수 없었다. 도이 전 의원은 1997년 한국의 김영진 의원과 손잡고 한일기독의원연맹을 세운 뒤 진정성 어린 활동으로 일본 기독 의원의 수적 열세를 만회해왔던 인물이다.

지난달 26일 도쿄 요도바시교회에서 열린 추모예배 직후 한일기독의원연맹의 핵심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본 측에서는 도이 전 의원에 이어 지도목사를 맡게 된 미네노 다츠히로 요도바시교회 담임목사가 나왔다. 한국 측에선 공동대표인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과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가 자리를 함께했다. 대화의 초점은, 어떻게 도이 전 의원의 유지를 계승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갈지에 모아졌다.

-한국과 일본에서 한 달의 시차를 두고 추모 예배가 열렸다. 양국의 시각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네노 다츠히로 목사=도이 전 의원이 가족들에게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라고 해서 소식이 빨리 전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더 빨리 부고 기사가 나왔다. 한국의 의원들과 기독교계가 도이 전 의원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느꼈다. 도이 전 의원이 정말로 한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도이 전 의원과 한국인 사이가 깊은 사랑의 끈으로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 일본에서도 늦게나마 도이 전 의원을 추모하고 관심을 보이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도이 전 의원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고베에서 7회 연속 당선됐을 정도로 그는 많은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를 지지하는 이가 훨씬 더 많다.

△장상 전 총리=도이 전 의원을 매국노처럼,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일본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분이야말로 애국자였다. 일본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도이 전 의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해지면서 분노를 가라앉히게 된다. 과연 제2, 제3의 도이가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추모예배에 모인 일본 분들의 말씀을 들으니 위로도 되고, 격려도 됐다. 도이 전 의원은 한 알의 밀알로 떨어졌지만 그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구나 하고 느꼈다.

-김 전 장관이 한일기독의원연맹 지도목사직을 미네노 목사에게 부탁해 수락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도이 전 의원의 비중이 컸을 텐데 향후 한일기독의원연맹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미네노 목사=제안을 받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마치 도이 전 의원이 나더러 맡아달라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한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더욱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은 총선에서 민주당이 힘을 잃으면서 가뜩이나 적은 크리스천 의원들이 더 줄었다. 신앙인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분도 있고, 신앙은 탄탄하지만 낙선된 분도 있어 도이 전 의원의 후계자를 찾기가 쉽진 않다. 하지만 초당파적으로 크리스천 의원들을 모으고, 한국과 교류함으로써 쉽게 풀리지 않을 ‘사랑의 끈, 평화의 띠’를 유지하려 한다.

△김영진 전 장관=19년 전 도이 전 의원과 한일기독의원연맹을 창립할 때 전·현직 의원, 대사와 국무위원을 역임한 평신도 지도자들을 모아 지도목사를 위촉했다. 지금 미네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 전통과 맥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감격스럽다. 향후 양국이 조율해서 지도목사 위촉예배도 함께 드리고, 가르침도 잘 받아야겠다.

-지난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 이후 양국관계가 더 나빠졌다.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한류마저 일본에서 외면당하는 등 국민감정도 안 좋다. 정치 외교 경제 문화적으로 꽉 막힌 상황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장 전 총리=양국은 현재 상당한 긴장관계에 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까지 포함해 세 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의 연대’밖에 없다. 비록 우리의 힘은 약하더라도 역사적 사명의식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은 겸허한 자세로 특히 더 그렇게 해야 한다. 이화여대에 있을 당시 한국, 일본, 중국 학생들이 1학기 동안 함께 수업을 듣게 하고 세 나라가 상대에게 배운 것, 서로 영향을 준 것을 가르쳤다. 정말 금세 친해졌다. 한·일의 다음세대, 젊은이들의 교류를 통해 제2, 제3의 도이를 키워내야 한다.

△김 전 장관= 한·일 간의 막힌 담, 깊이 팬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도이 전 의원의 삶과 정신을 이어가는 일을 양국 교회와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기존 활동에 더해 그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네노 목사=하나님께서 오늘 동북아 지역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평화와 일치, 복음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희망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섭리적인 시대를 맞이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목사님들과 일본교회의 장래를 지고 있는 젊은 목사들, 중국의 신앙 부활을 이끌어내고 있는 숨어있는 교회의 리더들이 수년 전부터 비밀모임을 하고 있다. 3국의 평화를 위해 선교단체들과도 협력하고 기도를 공유하며 그렇게 불을 붙여나가고 있다.

-동북아 복음의 연대로 평화를 일궈내기 위해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미네노 목사=그동안 한국교회는 일본의 영적 부흥을 위해 선교사를 보내주고, 큰 행사도 같이 하는 등 많은 사랑을 줬다. 이제 무엇을 더 요구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잘해야 할 때가 됐다. 많은 격려를 해 달라. 우리 스스로 채찍질하며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하겠다.(웃음)

△장 전 총리=한국교회에 쓴 소리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에 대해 새롭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흠결도 많지만 한국교회에는 아직도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일본에 그런 뜨거운 열정을 전해주고, 우리 역시 일본교회로부터 배우면서 함께 성장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 전 장관=도이 전 의원은 평생의 삶을 통해 일본 사회의 역사인식, 의식구조를 바꾸기 위해 몸부림치다 미완의 과제를 남긴 채 하나님 품에 가셨다.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교회의 역할과 시대적 과제를 생각해보면, 결국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정의와 평화, 생명이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일그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지구촌의 평화, 생명보존을 과제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도쿄=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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